협치는 갈등 속에서 합의 이루는 예술… 정치 발전 관건은 ‘제도화’ [Deep Read]

2024. 4. 3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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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주의 Deep Read - 尹·李 회담과 ‘협치’
尹·李회담, 공공선 창출의 계기돼야… ① 상호존중 ② 설득·타협 ③ 객관적 분석이 전제조건
다양성 존중 ‘주고받기’ 돼야 제도화 가능… 국민은 구경꾼 넘어 철저한 감시자 역할 중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의 회담이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됐다. 이 대표는 준비해간 모두발언을 15분이나 읽어 내려가면서 할 말을 다했고, 윤 대통령은 포용력 있는 모습으로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줬다.

이날 회담은 구체적 합의는 없었지만 협치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에서 협치란 권력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 속에서도 합의를 이뤄내는 예술이다. 정국 안정과 정치 발전의 관건은 협치의 ‘제도화’ 여부에 달렸다.

◇협치는 예술이다

이번 만남이 서로를 불신하는 대결과 갈등의 정치를 넘어 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협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협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핵심적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며, 국민의 날카롭고 냉정한 감시도 필수적이다.

협치는 정치세력들이 설득과 타협을 통해 정치 현안과 국정 과제를 해결해 가는 일련의 정치적 행위를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협치란 국민을 위한 공동선을 창출하려는 노력이지만, 쉽게 실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세력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치는 경쟁 속에서 합의를 구현해가는 정치예술이다.

우리 헌법은 입법·행정·사법으로 권력을 분리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국민의힘에 속한 윤 대통령이 행정부를 통할했지만, 입법부는 이 대표의 민주당이 장악함에 따라 대립과 갈등만 계속돼 협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4·10 총선에서 민주당이 171석의 거대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분점정부 상황은 계속되게 됐다. 권력 분점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원리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입법과 행정 권력의 대립으로 인해 국정의 교착 상태를 초래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저출생·초고령화의 사회구조 변화 속에서 의료와 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침체한 경제를 부흥시키는 조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처럼 국정의 교착 상태가 지속한다면 대한민국은 심각한 침체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은 여야를 막론하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만난 것은 그 성과와는 별개로, 협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행정과 입법의 막중한 책임을 지면서 함께 국정 과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협치의 전제조건

앞으로 협치가 제도화하고 성공적으로 이어져 나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전제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상호 존중. 각 정당과 정치세력 간의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국정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협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의 만남을 거부해 야당 대표를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 역시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안, 노란봉투법과 같은 주요 법안들을 다수의 힘으로 단독 통과시키는 ‘다수의 횡포’를 행사하는 등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 비판을 받았다.

협치의 본질은 다양성 인정과 수평적 협력이다. 양쪽 모두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태도가 전제돼야 한다. 대통령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력해야 하고, 민주당도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점하려는 의정 독주 유혹을 떨쳐 버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둘째, 숫자에 토대를 두는 게 아니라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설득과 타협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갖는 정치세력 간 협치는 대화를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대화가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하지 않고, 수적 우위 혹은 극단적인 팬덤의 영향력에 좌우된다면 협치는 불가능하다.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마다 일부 극렬 지지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가짜뉴스를 통한 선전선동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며 타협과 양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면 이성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협치는 불가능해진다.

◇정치적 ‘주고받기’

협치의 마지막 조건은 국정 과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철저히 수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개혁 같이 국민에 필요한 공공재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 역시 불가피하게 사회·정치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어 협치가 필수적이다. 윤·이 회담에서 의료개혁에 공감한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개혁의 기초가 되는 장래 수요·공급 예측, 재정 분석과 같은 문제에 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선행돼야 협치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기 위한 정치 흥정에만 매몰할 경우 국정 현안 해결과 공공선 창출을 위한 협치는 구현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협치의 메커니즘은 정치 주체들 간의 ‘주고받기’를 통한 교환 행위로 요약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거버넌스 이론부터 교환이론, 합의제·협의제·분점정부·연정 이론 등이 기본적 이론구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으론 효과적인 협치를 이루려면 철저한 협상 준비도 필요하다. 협치는 양보를 위한 양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협치라는 정치적 협상에 임하는 당사자는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단호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처음부터 양보하겠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는 사람은 무능력한 협상가다.

철저한 협상가는 상대방이 제시할 협상안을 예측하고, 대안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거기에 내재한 약점을 부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협상이 실패할 때를 대비하여 적절한 플랜B를 준비한다. 플랜B를 준비한 협상가는 협상 과정에서 분명한 우위를 점하고 자신이 원하는 타협안을 도출할 가능성이 크다.

◇감시자 국민

국민이 원하는 협치는 단순히 정치세력 간의 흥정을 위한 그들만의 정치 행위가 아니다. 협치의 근본 목적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내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적·정책적 대안을 만드는 데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국민이 협치의 구경꾼이 아니라 철저한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이 어떻게 국정의 현안 과제를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풀어나가는지 날카롭게 주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협치의 정례화·제도화가 이뤄진다면 한국 정치의 발전과 정국의 안정을 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용어설명

‘교환이론’은 인간관계의 형성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대가-보상’으로 파악하는 이론.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인간 활동의 본질은 교환이며, 교환을 통해 관계·사회·문명·세계가 형성됨.

‘협치’는 원래 행정학에서 영어 ‘거버넌스(governance)’를 번역한 것. 지금은 정치·행정·경제 등에서 공공의 목적을 갖고 궁극적인 합의를 지향하는 지배구조 혹은 행위라는 뜻으로 쓰임.

■ 세줄 요약

협치는 예술이다 :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간의 회담은 구체적 합의는 없었지만 협치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됨. 정치에서 협치란 권력을 둘러싼 극심한 경쟁과 갈등 속에서 합의를 이뤄내는 예술.

협치의 전제조건 : 협치가 성공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 설득과 타협, 국정 과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 수행 등 전제조건들이 충족돼야. 정치 발전과 정국 안정의 관건은 협치의 제도화에 있어.

정치적 ‘주고받기’ : 협치의 메커니즘은 정치 주체들 간의 ‘주고받기’를 통한 교환 행위. 국민은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이 어떻게 국정의 현안 과제를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풀어나가는지 주시하는 감시자가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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