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코리아 직원은 지역 환경운동가다

박준용 기자 2024. 4. 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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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30억원 이상 투입해 환경단체와 협업… ‘지원’ 아닌 ‘연대’ 지침 11년째 이어가
2022년 2월10일 경기 성남시 탄천 백궁보 해체 현장에서 파타고니아코리아 직원들이 보 철거를 위한 시위를 하는 모습. 오른쪽이 김광현 파타고니아코리아 환경팀 부장이다. 파타고니아코리아 제공

‘집 나간 백조를 찾습니다.’ ‘전국 보 철거 현황.’

2024년 4월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벽에 붙어 있는 문구들이 마치 환경단체 사무실에 온 것 같다. ‘집 나간 백조를 찾습니다’는 신공항 부지로 논란이 된 부산 가덕도 생태 습지를 보호하자는 문구다. ‘전국 보 철거 현황’은 전국 강과 하천의 미사용 보를 철거하자는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사무실은 다름 아니라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코리아의 사옥이다.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를 표방하는 업체다. ‘슬로 패션’으로 튼튼하고 오래 입는 옷을 만들어 버려지는 옷을 최소화하자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1985년부터 매출의 1%를 세계 각지 자연환경의 복원과 보존을 위해 사용하는 ‘1% 포 더 플래닛’(1% for the Planet)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세계 지역사회 환경단체에 기부한 금액만 1억4천만달러(약 1680억원)에 이른다. 파타고니아코리아는 본사의 ‘1% 포 더 플래닛’ 정책에 따라 국내 매출(2022년 기준 760억원)의 1%를 환경 프로젝트 등에 썼다. 파타고니아코리아를 설립한 2013년부터 11년 동안 30억원 이상에 달한다.

현장 활동가의 편에 설 수 있는 기업

금전적인 후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웃도어 브랜드 업체인데 직원들이 ‘지역 환경 활동가’처럼 지역 환경 이슈를 발굴하고 연대하기 위해 전국을 누빈다. 이런 활동을 이끄는 리더도 있다. 파타고니아코리아 환경팀 김광현 부장이다. 김 부장을 포함한 환경팀 구성원들은 동료들이 보기에 “(서울 사옥) 자리에 맨날 없는”(김재하 마케팅팀 부장) 사람들이다.

파타고니아 환경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활동가들과 협업하는 현장 밀착형이다. 대표적인 게 제주도 송악산 보전 캠페인에 참여한 일이다. 2013년 중국의 한 기업이 송악산 일대 땅을 매입해 호텔·콘도 등을 건설하는 개발에 나서자, 제주도민들을 중심으로 한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의 단체는 송악산 보전 운동에 나섰다. 이 운동은 곧장 변화를 끌어냈다. 2020년 초 제주도의회는 도의회 사상 최초로 이 사업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10월 말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가 이 일대 땅을 다시 중국 기업에서 매입해 도립공원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파타고니아코리아는 송악산 보호 단체와 연대하고 ‘송악산, 그냥 이대로 놔둡서’ 캠페인에 나섰다. 제주 농민이자 송악산을 지키는 환경운동가인 김정임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를 조명하는 유튜브 영상을 제작한 것이다. 김광현 부장은 김정임 대표 같은 이들을 돕는 게 파타고니아코리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싸우는 활동가의 헌신을 존중하고 연대하려는 거죠. 지역 환경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몇 명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 한분 한분의 진정성이 있기에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죠. 그분들 편에 설 수 있는 기업이 되고 싶어요.”

파타고니아코리아는 지역 환경 이슈를 홍보하는 다양한 채널을 활용한다. 파타고니아코리아 마케팅팀 김재하 부장은 “에스엔에스(SNS)·유튜브 계정이나 영상, 각종 환경운동에 정기적인 콘텐츠를 포스팅하고 있다”고 했다. ‘푸른심장’ 프로젝트가 하나의 사례다. 파타고니아코리아는 버려지고 파손된 보가 강과 하천의 흐름을 막아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의 보 철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웹페이지 ‘보 철거 현황’에서 전국 위성사진 지도 위에 보 철거 현황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관련 영상도 제작하고 서명 페이지도 개설했다. 캠페인 뒤 경기 성남시에 있는 백궁보(2022년) 등 10개 보가 실제로 철거됐다.

김광현 파타고니아코리아 환경팀 부장이 송악산 개발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 파타고니아코리아 제공

기업 홍보 실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김광현 부장은 파타고니아코리아가 소규모 단체와 지역 이슈를 지원할 수 있었던 건 환경운동을 기업 홍보와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비영리 조직에 기부할 때 홍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지원 예산의 경우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서울 중심의 대규모 비영리 조직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과는 반대로 지역 최전선 현장 활동 지원이 우선이에요. 홍보 목적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환경 프로젝트가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도 평가하거나 산출하지 않아요.”

회사는 지원하는 활동가들에게 “영수증이나 많은 서류 증명이 필요 없다”고 얘기한다. 복잡한 서류 처리 때문에 프로젝트가 경로를 이탈하거나 현장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게 김광현 부장의 설명이다. “(환경단체 협업 비용은) 저희에겐 꼭 내야 할 ‘세금’ 같은 거죠. 그래서 환경단체에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연대’한다고 말해요.”

파타고니아코리아 구성원들이 전국 각 지역의 환경 이슈를 담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파타고니아코리아 제공.

연대할 환경단체는 △지역성 △활동성 △긴급성 등 기준에 따라 선정하고, 현금과 현물 지원으로 돕는다. 정기 후원 외에도 낙동강의 녹조 원인 분석과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 낙동강 생태 습지를 훼손하는 대저대교 건립 반대 등 긴급 사안에도 예산을 배정했다.

국내에서 기업이 환경운동에 기부하는 일은 있지만, 직접 ‘개발 반대’라는 선명한 구호를 꺼내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의 환경 캠페인은 ‘플로깅’(조깅하면서 길가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나 플라스틱 줄이기 정도가 대부분이다. 튀는 행보에 파타고니아코리아 쪽이 겪어야 했던 고충은 없었을까. 김광현 부장은 “파타고니아에 4대강 등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환경 문제”라며 “생각보다 많은 고객이 저희보고 ‘정치적’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기업도 환경 문제에 이렇게 관심을 갖는구나’라고 생각해주신다”고 했다.

이는 파타고니아 본사가 환경보호를 말하는 일에 거침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17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발 이익을 이유로 미국 유타주의 국립공원 베어스 이어스 면적을 4500㎢ 줄이기로 결정하자, 파타고니아 본사는 ‘대통령이 당신의 땅을 훔쳤다’(The president stole your land)라는 문구를 누리집에 올리고 트럼프 행정부를 고소했다.

바위 뚫을 물방울 계속 떨어뜨리자

파타고니아코리아는 국내 환경운동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게 목표다. 김 부장은 기존 매출의 1% 지원을 포함해 본사가 설립한 비영리 재단(홀드패스트 컬렉티브), 개방형 기금(홈 플래닛 펀드) 등을 통해 국내 환경 문제 해결에 더 많이 지원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환경 프로젝트들이) ‘낙숫물로 바위 뚫기’ 같을 수 있어요. 변화가 어떻게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저희한테 중요한 건 이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게 하는 거예요.” 김광현 부장이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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