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유제품에 속수무책 한국 낙농업, ‘우유 식량안보’ 경각심 가질 때

이현준 기자 2024. 4. 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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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 자급률 9년 만에 상승세 전환했지만…
● 2026년부터 무관세, 국내 우유 시장 위축 불가피
● 낙농업, 특수성으로 인해 임의 생산량 조절 어려워
● “식량안보 차원에서 국산 우유 보호해야”

국산 우유 시장은 수입산 멸균유, 유제품으로 인해 위축되고 있다. 사진은 국내의 한 농가. [우유자조금]
최근 몇 년간 지속해서 하락세를 보이던 국내 우유 자급률에 변화가 생겼다. 1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 전망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우유 자급률은 45.8%로 2022년 대비 1% 상승했다. 2014년 60.7%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던 우유 자급률이 9년 만에 처음 상승세로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기에는 국내 낙농산업이 처한 현실이 좋지 않다.

우유 자급률 반등은 국산 원유의 생산량 증가가 아닌 우유 및 유제품 수입량이 줄며 나타난 현상이다. 오히려 국산 원유생산량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 지난해 원유 공급량은 국내 생산량, 수입량 및 이월 재고가 모두 감소했다. 2022년 대비 3.6% 감소한 438만8000천t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원유생산량은 2.3% 감소한 193만t을 기록했다. 원인은 사료수급여건 불안정, 여름철 기상악화, 낙농가 생산비 상승과 이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젖소 사육마릿수가 감소한 탓이다.

우유의 소비량 역시 계속해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연간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 소비자의 식품 기호도 변화, 다양한 대체음료 생산 등도 이유지만 시유시장마저 값싼 수입 멸균유로 대체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주요 유제품 수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부터는 우유에 무관세율이 적용돼 국내 우유 및 유제품시장의 위축은 가중될 전망이다.

더욱이 낙농산업은 본질적 특수성 때문에 여타 농축산물과 같이 수급상황에 맞춰 농가가 임의로 생산량 조절 및 생산 중단‧재개가 쉽지 않다. 단기적으로 대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원유는 젖소라는 생명체가 생산하는 산물이다. 암송아지가 성장하면 종부(암수 교미) 시켜 임신하게 되고 280여 일을 거쳐 출산하게 된다. 첫 출산 이후부터 원유를 생산하게 되는데, 이를 고려할 때 최소 2년이 넘어야 원유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준비기간에 많은 초기 투자를 해야 해 대부분의 농가는 많은 부채를 안고 낙농업을 시작하게 된다.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젖소는 차기 임신 전 건유기를 제외하고 매일 일정량의 원유를 생산한다. 어느 경우라도 농가는 원유시장의 수급 상황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매일 1~2회씩 젖을 짜야한다. 젖을 완전히 짜주지 않을 경우 유방염이 발생하는 등 젖소의 건강관리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인위적으로 원유의 생산량을 조절할 수가 없고, 이렇게 생산된 원유는 유가공업체와 사전에 약속된 양만큼 판매하게 된다. 이때 초과 원유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헐값에 판매하게 된다.

원유 수급은 계절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인다. 젖소는 목초를 주로 섭취하며 고온에 약하기 때문에 3~5월에는 수급 수준이 연평균 납유량을 웃돌지만 8~11월엔 연평균 납유량에 못 미치는 현상이 나타난다. 반면 우유 소비는 3~5월보다는 여름을 지나면서 8~11월에 더 많게 나타난다. 따라서 매년 3~5월에는 원유가 남게 되고 8~11월에는 원유가 모자라게 돼 불가피한 원유 잉여 문제가 발생한다.

사료 공급 문제도 심각하다. 젖소는 매일 목초를 섭취한다. 목초를 급여하기 위해선 광활한 목초지가 필요하지만 미국이나 호주와 달리 국내에서는 목초지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결국 건초를 수입해서 급여할 수밖에 없다. 일부 지역에서는 2모작을 통해 생산한 사료작물이나 볏짚 등을 이용하거나 옥수수 사일리지를 만들어 급여하지만 필요량 대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낙농은 외국의 사료 작물과 목초의 작황, 수송비, 환율 등에 따라서 사료 가격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에 대해 박종수 충남대 명예교수는 "우유‧유제품시장이 수입 멸균유와 유제품에 의해 잠식당하는 가운데 국내 우유와 유제품 시장이 속수무책으로 위축되고 있다. 어느 경우라도 우리의 우유는 식량안보차원에서도 보호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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