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만났지만 성과는 ‘빈손’…이재명의 ‘反尹 딜레마’
“이재명, 尹에 이용 당해” vs “회담 자체로 李 입지 강화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대표직에 오른 후 1년8개월 만에 윤석열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가졌다. 다만 이 자리에서 이 대표가 요구한 '특검법 수용' 등 의제를 두고 윤 대통령의 변화 의지나 공동합의문 도출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회담 성과에 대한 반응도 엇갈리는 분위기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추가 회동 가능성을 열어둔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표가 전처럼 선명한 '반윤(반윤석열) 기조'를 드러내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시간15분에 걸친 양자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먼저 손을 내밀면서 성사됐다. 총선 결과를 계기로 윤 대통령이 국정기조 변화와 야당 협치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표도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인만큼, 의제 설정도 접어두고 대통령과의 대화에 응했다. 특히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 등이 요구한 범야권 연석회의도 '패싱'하고, 윤 대통령과 단독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 대표는 회담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에게 ▲전국민 재난 지원금 지급을 비롯한 민생회복 지원 조치 ▲R&D 예산복원 ▲전세사기특별법 ▲의료개혁특위 ▲연금개혁 ▲이태원특별법 ▲채상병특검 ▲가족의혹 정리 ▲재생에너지로 산업재편 ▲실용외교 태도 변화 등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민주당 측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의 비공개 회담에서 각 의제마다 긴 시간 본인이 대화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담에서 뚜렷한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다.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이 이견을 보이면서 공동합의문 도출은 물론, 여·야·정 협의체 신설도 이뤄내지 못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윤 대통령의)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며 "상황인식이 너무 안 되어있어서 향후 국정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도 '단순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데 의미를 두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특히 민주당이 강조해온 '이채양명주'(이태원참사,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주가조작 의혹) 현안들과 관련해서도 대통령이 별다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우원식 의원을 비롯한 당내 중진들은 해당 사항들을 두고 "민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재명의 '빈손회담' 손익계산서는?
야권은 이번 영수회담 결과에 대해 '정부 책임론'을 내세우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총선 후 변화를 약속했으나, 다시 한 번 불통 의지만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에게 이번 영수회담 결과가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 대표의 총선 압승 배경에 '반윤(반윤석열) 기조' 바탕의 '정권 심판론'이 크게 작용했던 만큼, 이번 협상 기회에서 범야권 수장으로서 윤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성과 혹은 약속을 얻어내야 했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범야권에선 이 대표가 단순히 대통령의 지지율 타개를 위한 수단으로 소모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범야권 대표로 자리에 나갔으면 민감한 의제라도 윤 대통령에게 실질적 해결 방안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더욱 강하게 말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소통을 강화하자고 합의했으나, 이런 식이면 향후 민심을 대변하는 민감한 의제들을 이 대표와 민주당이 꺼내기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영수회담이 이 대표에게 장기적으로 득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법리스크로 리더십이 흔들렸던 이 대표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너라는 정치적 입지를 재확인했다는 분석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만약 이재명 대표가 앞으로도 당대표직을 맡는다면 기존 반윤 스탠스와 회담 성과가 모순되면서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며 "하지만 당초 회담에서 받아낼 현안 등 기대도 없었고 이 대표는 곧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는 만큼, 이 대표는 앞으로 대선 행보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 대표는 이번 영수회담을 가진 것 자체로 유리한 입지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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