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면 맞은 아워홈 10년 전쟁, 돈이 피보다 진했나

송응철 기자 2024. 4. 3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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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가 판 뒤집으며 10년여간 3차례나 경영권 바뀌어
몸값만 2조원대…아워홈, 오너 일가 손 떠나나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LG그룹 방계인 아워홈가(家)의 삼녀 구지은 현 부회장과 장남인 구본성 전 부회장 간에 지속된 10년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최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구지은 부회장의 지위가 상실되면서 구본성 전 부회장이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장녀 구미현씨가 구본성 전 부회장 편으로 돌아선 결과였다. 그동안 구지은 부회장과 한배를 타온 미현씨가 마음을 돌린 이유는 구본성 전 부회장이 제시한 지분 현금화 계획에 동조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계는 조만간 아워홈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최근 아워홈 정기 주주총회에서 구지은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시사저널 자료 사진·freepik

구지은 부회장, 이사회 퇴출 수순

아워홈은 4월17일 열린 정기 주총에서 구지은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미현씨가 연합전선을 구축해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아워홈은 고(故) 구자학 창업주의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38.56%)과 장녀 미현씨(19.28%), 차녀 명진씨(19.6%), 삼녀 구지은 부회장(20.67%) 등 4남매가 지분 98.11%를 보유하고 있다. 앞선 분쟁에서는 미현·명진·지은 세 자매가 연합을 이뤘다. 그동안 구본성 전 부회장이 열세일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러나 이번 주총에서 미현씨가 구본성 전 부회장과 손을 잡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두 사람의 아워홈 합산 지분율은 57.76%로 구지은 부회장과 명진씨를 압도했다. 그 결과 구지은 부회장은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6월 아워홈 이사회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공석이 된 아워홈 경영권은 미현씨에게 넘어갈 전망이다. 정기 주총에서 신규 사내이사에 미현씨와 그의 남편인 이영열 전 한양대 의대 교수가 선임됐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부부가 경영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전문경영인을 선임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장남·장녀 연합은 아워홈 경영권 장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자본금 10억원 이상의 기업은 사내이사를 최소 세 명 이상 둬야 하는데, 현재는 미현씨 내외 2명만 확정된 상태다. 주총에 앞서 구본성 전 부회장은 자신의 장남 재모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주주제안했지만 아워홈은 이를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미현씨는 오는 6월 중 자신들의 측근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기 위한 임시 주총을 열 계획이다.

가정주부인 미현씨는 그동안 아워홈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지은 부회장 간 분쟁 과정에서는 언제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세 자매 연합에서 명진씨와 구지은 부회장의 연합전선은 견고했지만, 미현씨는 오빠와 막냇동생 사이를 오가길 반복했다. 시작은 2016년 아워홈에서 남매의 난이 불거진 직후였다.

당시 구본성 전 부회장은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아워홈 경영권을 승계했다. 당시 4남매 중 유일하게 아워홈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후계자로 성장해온 구지은 부회장은 돌연 보직 해임된 후 아워홈 자회사인 캘리스코 대표로 밀려났다. 그 직후 남매간 갈등이 촉발됐다. 구지은 부회장은 구본성 전 부회장의 전문경영인 선임을 반대하면서 임시 주총 개최를 요구했다. 이때는 미현씨가 구본성 전 부회장의 편에 서면서 구지은 부회장의 반란은 무산됐다.

이후에도 남매간 갈등은 이어졌다. 구지은 부회장은 2019년 구본성 전 부회장의 장남 재모씨의 아워홈 사내이사 선임안을 놓고 분쟁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구 전 부회장은 아워홈의 캘리스코 식자재 납품을 중단하며 구지은 부회장을 압박했다. 계속된 다툼 속에서도 구본성 전 부회장은 아워홈 경영권을 지켜냈다.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연합뉴스

자매 연합, 미현씨 가압류 등으로 압박

상황이 달라진 건 2020년 구본성 전 부회장이 보복운전 혐의로 입건되면서다. 이듬해인 2021년 그가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자 미현·명진·지은 세 자매는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한다는 취지의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과 공동매각합의(주주 간 계약)를 맺었다. 세 자매가 주주총회 모든 안건에서 통일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위반할 경우 위약벌로 300억원을 지급하고, 향후 아워홈 지분을 동일한 가격과 조건으로 매각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세 자매 연합은 같은 해 6월 정기 주총에서 구본성 전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들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워홈의 새 대표이사에 선임된 구지은 부회장이 지분 매각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구지은 부회장은 매각 대신 경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구지은 부회장은 배당을 대폭 줄이기도 했다. 인건비 부담과 급격한 물가 상승 등으로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위기 경영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아워홈 배당금으로 생활해온 미현씨는 배당금 축소 방침에 크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다시 구본성 전 부회장과 손잡은 이유도 이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시 두 사람은 라데팡스파트너스를 자문사로 선정하고 보유 중인 아워홈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그러나 매각 작업은 주주 간 계약에 발목이 잡혔다. 당시 법원은 2021년 6월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날까지 의결권을 통일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주주총회를 앞두고 구본성 전 부회장은 경영권 매각을 즉각 추진하고, 배당도 확대하겠다며 미현씨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협력을 의식한 구지은 부회장과 명진씨는 4월초부터 주주 간 계약을 근거로 미현씨를 압박했다. 법원에 이사 선임과 관련해 의결권 행사를 강제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것이다.

또 통일된 의결권 행사라는 주주 간 계약 내용을 위반할 경우 발생하는 위약벌 300억원을 보존한다는 취지로 미현씨가 보유한 서울 용산구 나인원한남 자택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건물, 아워홈 주식 등을 가압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번 주총 직전에 미현씨에 대한 의결권 행사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계약당사자들의 의결권 행사에 세 사람 간 합의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 ⓒ뉴시스

아워홈, M&A 시장 등장하나

실제 미현씨는 이번 주총을 앞두고 등기이사를 '주주 또는 주주가 정하는 사람'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반면 구지은 부회장과 명진씨는 등기이사를 '주주 간 계약당사자 또는 계약당사자가 정하는 사람'으로 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양측은 구본성 전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여부를 놓고 이견을 보인 셈이다.

향후 구본성 전 부회장과 미현씨 남매는 임시 주총을 통해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한 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아워홈을 운영하며 매각 작업을 추진할 전망이다. 만일 상황이 장남·장녀 연합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향후 아워홈은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된다. 국내 2위 단체급식 업체인 아워홈은 알짜 매물로 꼽힌다. 실제 2022년 매각 추진 당시에도 글로벌 PEF 운용사인 블랙스톤과 KKR 등 40여 곳이 매각안내서를 수령하고 인수를 검토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아워홈의 몸값은 2022년보다 증가한 2조원대로 추정된다. 아워홈은 지난해 전년 대비 약 8% 늘어난 1조98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6% 증가한 94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구지은 부회장이 그동안 핵심 과제로 삼아온 글로벌 사업 부문 실적 호조와 배당 축소 등 위기 경영의 결과로 해석된다.

현재로서 구지은 부회장과 명진씨의 선택지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미현씨를 설득하거나 투자자를 확보해 미현씨가 만족할 가격에 그가 보유한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구본성 전 부회장과 미현씨가 경영권 지분을 외부에 매각할 경우 아워홈 내에서 구지은 부회장과 명진씨의 입지는 크게 축소될 것"이라며 "두 사람이 아워홈 지분 매각에 나서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남매의 난과 관련해 아워홈 관계자는 "주주 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회사가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의 언론 소통을 대행하는 마콜컨설팅그룹 관계자는 "주총 의결과 관련해 구본성 전 부회장이 공식적인 입장이나 의견은 내놓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최근까지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용 대부분이 사실이라고 전해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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