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5일만에 낡아버린 마석도의 ‘닻내림’ 한방[영화로운 텅장탈출]

박문수 2024. 4.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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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방정식 되풀이한 흥행 괜찮나
스크린 점유율 82%..선택권도 침해
여성성 소비하고, 폭력을 정당화
클리셰 반복은 지겹고 뻔해
범죄도시4 스틸컷. 뉴시스

'범죄도시4' 스틸컷. 뉴스1

- 이 기사에는 '범죄도시4' 속 대사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스포일러 주의]-
[파이낸셜뉴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는 속담은 낡았다. 장르가 ‘마동석’이라는 세간의 호평 속에 한국형 오락·액션영화 '범죄도시4'는 낡은 방식의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성을 성공의 상징으로 소비하고, 거대한 악에 맞서는 과정에서 사소한 범죄를 용인하는 이야기가 전국 영화관 스크린의 82%(29일 기준)를 잠식한채 탄탄대로를 걸어도 괜찮은 걸까.

29일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영화 '범죄도시4'가 개봉 5일 만에 누적관객 425만3551명을 돌파했다. 전작 범죄도시·2·3의 캐릭터와 줄거리는 물론 대사와 의상까지 그대로 빼다 박은 영화는 지난 27일 토요일 하루에만 관객 121만9040명을 동원해 흥행몰이 중이다. 이는 '범죄도시3'가 지난 2023년 6월 3일 토요일에 기록한 일일 관객수 116만2564명을 뛰어넘는 시리즈 최다 일일 관객수 동원 신기록이다.

■후려치는 맨손 액션 통쾌함 뒤 남는 '찝찝함'
2024년에는 미친개라고 해도 몽둥이찜질을 퍼붓다가는 경찰서에 끌려갈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도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도시4'에서 마석도(마동석 분) 형사는 '나쁜놈들'에게 강력한 주먹 한방을 내리 꽂는다. 물론 악랄한 범죄자에게만. 그래도 되는지 영화는 성찰하지 않는다. 명분은 있다. 아들을 잃고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는 엄마와의 약속이다.

영화는 범죄 피해자인 아들의 죽음으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엄마라는 캐릭터에게서 마석도의 정당성을 찾는다. 끈덕지게 살아가는 어머니상을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이유만으로 맥없이 무너지는 인물이라니. 2024년이 맞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총칼을 집어 든 나쁜놈들에게 피 튀기는 맨손 액션으로 정의구현을 하고는 "약속 지켰습니다. 어머님"하면 그만일까. 이런 방식의 정의구현은 틀렸다.

마석도는 부족한 수사비를 메꾸기 위해 ‘나이트’를 관리하는 건달을 ‘삥’ 뜯는다. 시리즈에서 '룸살롱' 깡패에게 접대를 받고, 동네 조폭들에게 호떡 값을 전가하던 장면과 겹친다. 유머의 가장 강력한 원칙 중 하나인 ‘반복’으로 시리즈를 향유하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형사가 범죄자의 돈을 갈취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타락한 경찰이 불량배에게 용돈을 받는 장면은 클리세다. 지겹고 뻔하다. 마석도는 타락했나.

■반복되는 주먹질, 그 손에도 피 묻는다
688만명, 1269만명, 1068만명을 연달아 동원하며 나쁜놈들을 시원하게 싹 쓸어버려 온 마석도니까 괜찮을까. 마석도의 주먹엔 피가 뚝뚝 묻어난다. 거대한 악에 맞서다 보면 작은 일탈이나 타협쯤은 웃음 코드로 소비해도 된다는 것일까. 가르칠 생각 따위는 없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시리즈의 시작인 ‘범죄도시’는 중국동포(조선족) 비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원인인 캐릭터 장이수에게 ‘FDA’ 배지를 줬으니 장족의 발전일까.

개그 캐릭터인 장이수는 이 영화에서 관객의 숨통을 터준다. 그는 ‘좋아 가보자’며 경찰 몽둥이를 들고 ‘나쁜놈들’을 후려팬다. 문제는 그에게 ‘구찌’ 선물을 받아든 채 “오빠 어젠 내가 미안했어, 내가 오빠 얼굴 보고 만나는 거 알지”라고 말하는 여성 캐릭터다. 오픈카를 타고 함께 신호위반을 하는 장면에서 조수석에 앉아 있는 여성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두 인물은 극의 초반과 후반에 한번씩 번갈아 등장하는데 역할이 똑같다. 수미쌍관으로 여성성을 소비하니 입을 떡 벌어졌다.

모든 실패의 원인은 과거의 성공 경험 때문이다.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방식을 따라하다가 실패한다. 내 관점에서 안타깝게도 ‘범죄도시4’는 이전의 방식을 답습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이미 손익분기점인 관객 35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투자자이자 시나리오에도 관여하는 영화 안팎의 주인(공)인 마동석은 벌어들인 돈을 시나리오에 투자한다고 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이후 시리즈에서 여성 빌런이나 여성 형사도 출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콱 박힌 닻, 한방에 뽑아내길
이제는 마석도가 낡은 닻을 뽑아냈으면 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은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로 다양한 경제 활동을 설명한다. 배가 닻을 내리면 그곳에 머물게 되듯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처음 입력한 정보는 이후 의사결정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처음 한번 입력된 정보가 이후의 행동에 작용하는 행태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대표적인 '닻내림 효과'의 예시는 가격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한번 강남의 비싼 아파트 값에 닻을 내린 소비자들은 아파트의 실제 가치보다 더 비싼 가격을 쉽게 받아들인다.

50% 70% 세일을 내건 매장들은 판매자 입장에서 닻내림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최초에 1000만원이라고 접한 핸드백이 50% 할인되면 500만원이니까 싸다고 느끼게 된다.

범죄도시 시리즈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여성에 대한 도구화나 사소한(그렇게 취급되지만 결고 사소하지 않은) 범죄의 장면들도 영화 소비자의 기억속에 박혀있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작하고 배급하고, 시리즈에 투자한 이들도 스스로의 인식 속에 마석도의 원펀치에 쓸려나가는 그림이 닻내림(앵커링)된채 낡고 낡은 이야기를 재생산하고 있다. 관객은 어디로 갔나.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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