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준 독립기념관장 “우리의 독립, 누군가 시켜준 게 아닌 스스로 찾은 것” [차 한잔 나누며]

구현모 2024. 4. 30. 0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韓 독립운동, 세계적 자랑거리
연구·기념하는 나라 흔하지 않아
그간 국제 열강 관한 탐구 부족
국제회의 관련 자료 발굴에 노력
‘이승만’ 역사적 사실대로 알려야”

“우리의 독립은 누군가 시켜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은 것입니다.”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은 29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독립운동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강대국이 우리를 독립시켜 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며 “그러나 열강들은 처음부터 우리를 독립시켜 줄 생각은 없었다. 물밑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이 29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제공
한 관장은 2021년 1월 제12대 독립기념관장으로 취임했다. 오랜 시간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연구해 온 학자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독립기념관을 엄숙한 곳이 아닌 우리 역사를 자랑스러워하고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말했다. 한 관장은 “한국의 독립운동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라며 “제국주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된 나라 대부분 독립을 했지만 한국처럼 치열하게 한 나라는 많지 않고, 독립운동을 연구하고 기념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독립기념관 내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는 그동안 연구가 부족했던 국제회의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를 토대로 ‘한국독립운동과 국제회의’라는 특별전시를 열었다. 한 관장은 “그동안 독립운동사가 일본하고 어떻게 싸웠는지 위주였고, 국제 열강이 한국을 어떻게 인식했고 우리는 열강들을 어떻게 활용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연구가 부족했다”며 “국제회의를 연구하는 것이 시야를 넓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29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이 1919년 10월28일자 독립신문을 보여주고 있다. 독립신문은 같은 해 8월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자 대회에서 한국의 독립을 승인해달라는 결의문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제공
대한민국임시정부 등 독립운동가들은 국제회의가 열릴 때마다 우리 대표단을 참석시키고 국제사회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한 관장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 등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사례만 알고 있지만 같은 해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자 대회에는 임시정부 조소앙이 참석했다”며 “25개국 대표단이 모인 이 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승인해 달라는 결의문이 제출되고 만장일치로 통과했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은 2019년 네덜란드 국제사회연구소에서 존재가 확인된 이 결의문의 실물을 지난 2월 공개했다.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논의됐던 것도 임시정부의 치열한 외교전이 있었던 덕분이다. 한 관장은 “당초 미국과 영국은 일본이 패망하면 한국을 국제 공동관리하려고 했다”며 “임시정부는 이를 알아차리고 1943년 7월26일 장제스를 만나 카이로에서 일본이 패망하면 한국이 즉각 독립될 수 있도록 주장해 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회담 당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한국의 독립을 반대했으나 장제스의 요구가 관철됐다. 한 관장은 “장제스와 임정 요인의 면담 기록은 1998년 대만 타이베이 중국 국민당 당사 연구소에서 찾았는데, 밤에 그것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며 “그런 노력이 없었으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을 국제세력의 통치를 받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 독립운동 주체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깎아내리는 주장도 많다. 한 관장은 “과거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처벌받지 않게 하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에게 좌익 딱지를 붙였듯 지금도 그런 인식으로 독립운동사를 바라보는 집단이 있다”며 “지금도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최근 가장 논쟁이 되는 인물인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사실 그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 관장은 “제헌헌법 제정 당시 헌법기초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당시 이승만 국회의장이 헌법 전문을 써와서 넣자고 했다”며 “기초위원들은 다른 나라 헌법에는 전문이 없다고 반대했지만 결국 설득해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세워준 것이 아니며 우리는 1919년에 임시정부를 세웠고 민주주의를 도입했던 나라라는 점을 전문을 통해 밝혀야 한다는 게 이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한 관장의 사무실에는 ‘불가능에 도전해서 가능을 창조한 독립정신’이란 글귀가 걸려 있다. 그는 “불가능에 도전해서 가능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인 에너지이지 않나”라며 “우리의 정체성이자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신적인 원동력인 것 같다. 많은 분이 독립기념관에서 이런 에너지를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천안=구현모 기자 lil@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