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vs 5천억…전세사기 ‘선구제 후회수’ 얼마 드나

최종훈 기자 2024. 4. 3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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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시민사회 시각 큰 차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2023년 12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뒤 5월 처리를 추진하고 있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 관심을 모은다. 최대 쟁점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공공기관이 매입해 보증금 일부를 우선 돌려주도록 한 이른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인데, 이를 시행할 경우 투입될 재원 규모에 대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시각이 큰 차이를 보여 논란을 빚고 있다.

개정안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매입을 신청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비롯한 채권 매입 기관이 공정가치 평가를 거쳐 이를 매입하도록 했다. 이때 채권 매입 가격 하한선은 소액보증금 최우선 변제금 비율 이상이 되도록 규정했다. 최우선 변제금액은 서울 55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과 세종특별자치시, 용인·화성·김포시 4800만원, 광역시와 안산·광주·파주·이천·평택시 2800만원, 그 밖의 지역 2500만원 등이다. 법안에는 ‘비율’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개념 정의는 빠져 있는 탓에 정부와 시민사회는 사실상 채권 매입 가격 하한선을 소액보증금 최우선 변제금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선구제 후회수를 실행하면 많게는 3조~4조원의 재원이 소요된다고 말한다. 국토부는 내년 5월 말까지 최대 3만6천명가량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는다고 전제한 뒤 피해자 평균 보증금 1억4천만원의 70%(9800만원)를 지급하고 반환채권을 사들일 때 3조5천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했다. 국토부는 공정가치 평가도 쉽지 않다고 본다. 국토부 관계자는 “몇년 뒤 주택 낙찰률까지 예상해서 개별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데 오차가 클 수밖에 없다”며 “추후 낙찰되는 금액 대비 과다·과소 추정한 경우와 분쟁이 생길 수도 있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시민사회에선 최대 5850억원이면 선구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는 피해자 수를 2만5천명, 그중 보증금 일부조차 회수할 수 없는 후순위 임차인이면서 최우선 변제 대상이 아닌 이들을 50%로 가정해 최대 4875억원이 소요된다고 봤다. 만일 피해자 수가 3만명으로 늘어난다면 최대 5850억원이 든다는 계산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 중 약 30%로 추정되는 선순위 임차인에 대해서는 정부가 전혀 재정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며 “피해 금액의 일부라도 최우선 변제금의 수준 내에서 빨리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것이 시민사회와 피해자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선구제 비용 추산이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편차가 있는 피해자 수 추계보다는 채권 매입액 하한선인 ‘최우선 변제금액 비율 이상’에 대한 엇갈린 해석에 기인한다. 시민사회는 최우선 변제금을 우선 보상하고 나머지 보증금에 대해선 공공기관이 경매 등을 통해 회수했을 경우 지급되는 것이어서 추가적인 재정 부담이 없다고 본다. 반면 국토부는 피해자들이 ‘후회수’를 원치 않고 가치 평가를 통한 채권 보상(정산)을 요청할 경우 보증금의 최대 70% 선까지 보상액이 투입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보고서를 낸 윤성진 국토연구원 주거정책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개정안이 채권 매입 가격 하한선으로 ‘우선 변제를 받을 보증금의 비율 이상’이라고 모호하게 규정하면서 다양한 추측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이를 반영해 이번 개정안은 피해자 요건인 임차보증금 기준을 현행 3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상향하고, 전세사기 주택 매입을 신청했으나 매입하지 못한 피해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내용을 담았다. 신탁 등기가 돼 있는 전세사기 주택의 경우는 신탁회사가 주택 인도 소송을 유예 또는 정지하도록 하는 방안도 명시했다. 또 피해 구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외국인도 전세사기 피해자 범위에 포함시키고, 임대인의 회생·파산으로 인한 경매도 유예와 지원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두었다. 이 밖에도 여러 전세사기 피해자가 우선 매수하겠다는 신고를 하고 특별한 합의가 없으면 변제받을 수 있는 임차보증금의 비율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매수할 수 있도록 새로 규정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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