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얇은 담배는 덜 해로울까... 低타르 마케팅에 감춰진 진실

김은영 기자 2024. 4.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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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흡연은 없어... 함량보다 중요한 건 ‘유해성분’
내년 11월 담배유해성관리법 시행... 유해성분 2년마다 공개
허술한 측정방식, 규제 벗어난 합성 니코틴 등은 해결 과제

‘0.1mg’ ‘0.5mg’.

담뱃갑에 표기된 타르 ‘함량’은 흡연자들이 담배를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다. 다수의 흡연자는 함량이 낮은 담배를 상대적으로 순한 담배로 인식하고 이를 구매한다.

슬림형 담배의 인기가 이를 방증한다. 지름이 기존 담배보다 작은 슬림형 담배는 대부분이 타르 함량이 1.0mg인 저(低)타르 담배로, 국내 시장 점유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1996년 출시된 KT&G의 초슬림 담배 ‘에쎄’는 국내에서 4965억 개비가 팔리며 20년째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경쟁사들도 슬림형 담배를 내놓고 있다. BAT로스만스는 지난해 6월 저타르·저니코틴을 내세운 ‘던힐’ 신제품을 내놨고, 필립모리스는 올해 1월 ‘말보로 1mg 수퍼 슬림’을 출시했다.

서울의 한 편의점의 담배 진열대. /뉴스1

◇’저타르, 라이트, 마일드’... 담배 회사의 말장난

그러나 저타르 담배의 유해성은 일반 담배와 다르지 않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흡연은 중독 증상이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은 체내에 필요한 일정 수준의 니코틴양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중독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흡연할 수밖에 없다.

일정한 양의 니코틴을 채울 만큼 담배를 피워야 금단 현상이 없기 때문에 저함량 담배를 선택하더라도 연기를 더 깊게 들이마시고, 더 많은 양의 흡연을 하는 보상 행동을 하게 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저타르(0.1mg) 담배 흡연자의 흡연 습관을 분석한 결과, 저타르 담배 흡연자가 표기된 함량보다 최대 95배 타르를 더 흡입했다.

◇안전한 흡연은 없다... 중요한 건 ‘유해성분’

타르란 담배 연기에서 니코틴과 수증기를 제외한 나머지 물질의 무게 개념이다. 타르 양이 적다고 담배가 덜 해롭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타르는 규제의 타당한 근거가 아니므로 측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사용하는 담배의 니코틴 함량에 따른 차이. /한국건강증진개발원.

해외 선진국들도 이런 분위기를 따른다. 미국 법원은 2017년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담배 회사들에 ‘저타르, 라이트, 울트라 라이트, 마일드, 천연(Natural)’ 등의 수식어를 지닌 담배를 흡연하더라도 건강상의 이익이 크지 않다는 정정 보도문(Corrective statement)을 내도록 명령했다.

이에 담배 회사들은 성명을 내고 “많은 흡연자가 담배를 끊지 않고 저타르 및 라이트 담배로 전환하는 이유는 해당 담배가 덜 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그렇지 않다”라며 “저타르 담배 흡연자들은 본질적으로 일반 담배와 같은 양의 타르와 니코틴을 흡입한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담배는 암, 폐 질환, 심장마비 및 폐렴을 유발한다’는 문구도 덧붙였다.

중요한 건 함량이 아니라 ‘유해성분’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안전한 수준의 흡연은 없다”면서 “적은 양의 담배를 피우더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했다.

우리 담배 회사들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담배업체 한 관계자는 “저타르 담배가 덜 해롭다는 상식이 만들어진 건 담배회사의 마케팅 때문”이라며 “이는 선진국의 담배 정책과는 다른 정책”이라고 말했다.

◇내년 담배유해성관리법 시행... 규제 허점은 숙제

다행히 담배유해성관리법의 제정에 따라 내년 11월부터는 시중에 판매하는 담배의 유해성분을 2년마다 공개해야 한다. 현재는 니코틴, 타르 등 유해성분 8종만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을 시행하기 위해 유해성분 측정 방식 등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다. 현행 담배 유해성분 측정 방식은 담배 필터의 공기구멍(천공)을 막지 않고 측정하기 때문에 담배 연기가 공기에 희석되며 유해성분의 양이 적게 측정돼 실제 흡연자가 흡입하는 타르와 니코틴의 양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담배 연기 성분의 기계 측정 방법과 실제 흡연 행태 비교. /한국건강증진개발원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로 인정되지 않아 규제를 피해 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법상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제조한 것’만 담배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합성 니코틴 제품은 담배소비세 등 각종 세금과 국민건강증진부담금도 붙지 않는다. 미국 등 해외에선 연초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니코틴이 포함되면 담배로 규정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합성 니코틴 용액의 수입량은 2020년 56톤(t)에서 지난해에는 200t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합성 니코틴 1t으로 약 90t의 전자담배 액상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담배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에선 담배 관련 정책이 금연을 목표로 엄격히 시행되는 데 반해, 한국은 애매한 규정과 마케팅으로 다른 담배로의 전환이나 비흡연자들의 흡연 시작을 쉽게 유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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