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코끼리를 옮겨야 할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 4.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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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연금의 원조는 그리스, 로마 시대 군인연금이다. 중세에 와서 신부, 공직자로 확대됐다. 근대적 의미의 연금은 독일 비스마르크가 1889년 도입한 근로자 노령, 장애보험이다. 20세기 들어서 일반 국민으로 확대됐다.

우리나라는 1960년 공무원연금이 처음으로 시행되었고, 1963년에 군인연금이 공무원 연금에서 분리됐다. 그리고 사학연금이 1975년 시행되었다. 국민연금은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되어, 1995년 농어촌까지 확대되었고, 2006년에 비로소 전 국민이 가입대상이 되었다. 지난해 말 기준 적립금은 1036조 원에 달하며, 일본 공적연금(1987조 원), 노르웨이 국부펀드(1588조 원)에 이어 세계 3위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엄청난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제도에 늘 따라다니는 말이 '고갈 위험'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 때부터 2049년 정도면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었다. 당시 보험료율(내는 돈)은 3%로 낮았지만,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파격적으로 높은 70%였다. 그러다 2007년 소득의 9%를 내고, 평균 소득의 40%를 받도록 개정됐지만, 여전히 국민연금의 심각한 재정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제도가 현행대로 유지된다면, 적립기금은 2039년에 1972조 원으로 최고치에 도달한 후 점차 감소하여 2054년에 소진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과 엄청나게 빠른 고령화로 경제활동 인구는 급속히 줄어드는 반면 부양 노인층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전 세계 최저이며, 심지어 4분기에는 0.65를 기록했다. 참고로 OECD 38개 국가 평균출산율은 1.5 수준이다.

만일 기금이 소진되면, 현행 연금제도는 보험료를 올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연금 급여를 감당하려면 보험료율을 33%~35% 정도로 인상해야 한다. 그래서 앞 세대는 낮은 보험료를 내고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청년세대는 훨씬 더 많은 돈을 내고도 상대적으로 적은 연금을 받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보험료율을 올릴 순 없다. 세대 간 형평성이 지나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되고,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저출생 문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고, 기대 수명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인 청년층의 보험료로 다수의 노령층을 부양하는 현 연금제도에서는 뾰족한 대안이 나올 수 없다. 미래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막대한 돈을 부담하게 하는 현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령층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연금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은 38.1%로 제일 높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층은 앞으로 받을 연금액이 줄어들까 걱정이 깊다. 청년들은 많은 돈을 내고도 나중에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연금을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만큼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 연금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사회보장제도로서 노후를 든든히 하는 데 방점을 두기도 하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불교에서는 코끼리를 매우 신성한 동물로 여기지만, 경제학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국민연금이 대표적인 '코끼리'다. 연금개혁은 선진국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가 되었다. 출산율은 줄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금 전문가인 카를 힌리히스 브레멘대 교수는 연금개혁의 어려움을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했다. 연금 수혜자들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구조개혁은 결사반대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덩치가 매우 크고 다루기 힘든 코끼리를 원하는 장소로 안전하게 옮기는 일에 비유한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위험도 따른다. 정권이 무너지기도 했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등은 연금 개혁에 손을 댔다가 중도 낙마하거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개 안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확정했다. 1안(소득보장안)은 현재 9%와 40%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13%와 50%로 모두 인상하는 것이고, 2안(재정안정안)은 12%와 40%로 내는 돈만 소폭 인상하고 노후에 받는 돈은 그대로 두는 것이다. 2개 안 중 어느 쪽을 택해도 연금 고갈 시점이 단지 7∼8년 정도 늦춰질 뿐 개혁의 효과는 미미하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연금개혁의 시계추가 멈춘 데다 세대 간 갈등과 당리당략을 넘어선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대안이 제시된 것도 의미는 있다. 연금개혁은 현 정부 출범 직후 '인기 없는 일이지만 해야 하는' 3대 개혁 과제로 제시했으나, 여야가 서로 공을 떠넘기듯 특별한 진전 없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며 표류해왔다.

연금개혁의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제는 국회 임기가 불과 한 달 정도 남았는데도 연금개혁을 둘러싼 여야 평행선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여야는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 사이에서 국민연금 개혁의 방점을 어디에 둘지를 놓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 공론화 조사에서 과반 이상이 찬성한 소득보장안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연금개혁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서울과기대 김영순 교수는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영국 연금개혁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코끼리 쉽게 옮기기'라는 책을 펴냈다. 영국 정부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면밀하게 분석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료를 만들어 모든 국민들의 동의를 구했다. 그 결과 '대중의 이해'를 이끌어 내며 개혁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총론찬성 각론반대'만을 외칠 게 아니라, 이제 코끼리를 옮겨야 한다. 최선만 찾다가 실기하여 결국 최악으로 가는 경우만은 막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안정적인 노후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고 진지하게 다가가면, 국민들 모두 코끼리 옮기는 일에 동참하리라 믿는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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