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분노 쏟아내는 의사, 분노조차 못하는 환자

조백건 기자 2024. 4. 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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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휠체어에 앉은 환자들 줄이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뉴스1

“(교수를) 털끝 하나 건드리면 14만 의사들은 하나로 뭉쳐 싸울 것.”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7일 성명을 내고 “복지부가 의대 교수님들을 겁박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공무원법 적용을 받는 의대 교수가 집단 사직을 하면 ‘징역 1년’의 형사 처벌을 받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익명의 정부 관계자 발언이 한 인터넷 언론 기사에 실리자 이를 문제 삼아 날 선 반박을 쏟아낸 것이다. 교수 단체들은 “이 발언을 한 자(者)에 대해 100억원의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도 했다.

환자들은 요동쳤다. 중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왜 자꾸 교수님들 자극하느냐. 우리 아이 큰일 난다’ ‘우리 선생님마저 떠날까 봐 너무 무섭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지난 2월 말 전공의 이탈로 의대 증원 갈등이 시작된 이래 의료계는 매일같이 ‘무서운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의협 비대위원장은 지난 24일 “5월이 되면 경험하지 못한 의료 대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직 의협 회장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의협 임원이 “데이트(정부와 의료계 협의) 몇 번 했다고 성폭행(의대 증원)해도 되느냐”는 막말을 했을 때마저 환자들은 “이러다 화난 의사 선생님들이 다 뛰쳐나가는 것 아니냐”며 떨었다.

정부가 ‘불쏘시개’를 던진 일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집단행동으로 의사가 없으면 전세기를 내서라도 환자를 (외국에서) 치료하겠다”는 복지부 차관의 발언은 남아 있는 의사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선처는 없다” “의사들의 제약사 갑질을 신고하면 최대 30억원을 보상금으로 주겠다”는 정부 공식 발표가 나왔을 때 의사들은 “저급한 겁박에 분노한다”고 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분노하지도 못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거의 매일 살기등등한 공방을 벌일 때, 그들은 “수술이 연기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호소문을 낼 뿐이었다. 의사와 관료들의 날 선 독설 사이에 낀 환자들은 베이고 시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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