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단 하나의 의자

2024. 4. 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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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순간, 다리가 부러진 의자라니.

자꾸만 기울어지려는 몸체를 가다듬는 작고 낡은 의자 하나가 선하다.

매 순간 우리를 골몰하게 하는 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가만히 숨을 고르는 단 하나의 의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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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의자는 그의 유일한 벗
죽으려는 뜻마저 온몸으로 지지해 주었지만,
 
살아 보려고 뭐라도 하려는 인간과
죽어 버릴까, 망설이는 인간은 한통속이어서
 
그를 위해 마련된 단 하나의 의자는 다리가 부러졌다
 
의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죽음을 경배하던 그가
끝내는 양손으로 끊어진 줄을 붙든 비겁함을 보며
 
밀린 공과금 몇 푼어치가 막막한 사람에게
죽고 싶으면 죽어
타이른 지난날을
나는 뉘우친다
 
(하략)
결정적인 순간, 다리가 부러진 의자라니. 끊어진 줄이라니. 의자 아래 주저앉은 한 사람은 거세게 고동치는 심장을 쓸며 눈가를 비집고 나온 뜨거운 물을 닦았을 것이다. 시인의 말대로, 죽어 버릴까 망설이는 인간과 살아 보려고 뭐라도 하려는 인간은 한통속일 테니까. 그 사실은 새삼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아직 의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 또한. 자꾸만 기울어지려는 몸체를 가다듬는 작고 낡은 의자 하나가 선하다.

매 순간 우리를 골몰하게 하는 의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 할지, 발바닥을 대고 올라서야 할지 갈등하게 하는 것. 이따금 우리는 그런 의자 앞에 엎드려 “울면서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비굴하게” 설치기도 하는데. 의자란 원래 그런 것일까. 어쩌면 “우리를 무릎 꿇리지 않고 앉아 있도록 하는, 그런 우아한 의자”는 어디에도 없는 게 아닐까.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다만 간직하고 싶다. 곁에 의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가만히 숨을 고르는 단 하나의 의자를. 단 하나의 삶을.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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