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범 칼럼] 불확실성 키우는 총선 공약은 버려야 한다
2000년대 이후 거시경제학 연구는 불확실성이 주가·환율과 같은 금융 변수뿐만 아니라 국내총생산(GDP)·고용·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거시경제 변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최근 이란까지 가세한 중동에서의 전쟁, 벌써 3년째에 접어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의 각축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까지 가세한 미국 대선 등 대외 불확실성의 증가는 환율과 주가를 요동치게 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거시경제 운용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최근 급등한 환율이 수출 증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수입 가격을 상승시켜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의 상승으로 촉발된 물가 불안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또 전쟁 등의 여파로 국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한국의 경제 회복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는 대외 불확실성에 더불어 선거 기간 여야가 앞다퉈 쏟아냈던 선심성 공약들이 어떻게 정리될지 여부도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불확실성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도 언급된 야당의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정책이 실행될지, 그리고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얼마나 될지 등 많은 것이 불확실하게 보인다. 야당의 주장대로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은 침체된 국내 수요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약이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듯이 이 정책도 내수 진작의 원하는 정책 효과뿐 아니라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지난 1분기 한국의 GDP가 예상을 상회하는 1.3% 성장을 보였다는 최근 보도를 고려하면 현재 한국 경제는 완만하지만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은 경제를 필요 이상 자극해 추가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약 13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야당이 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들은 적이 없다. 이미 다른 분야에 책정된 예산을 전용해 재원을 마련한다면 줄어드는 예산 분야에서는 정부 지출이 줄기 때문에 야당의 주장만큼 장밋빛 재정지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면 현재의 내수 진작을 위해 미래 세금을 당겨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채 상환은 미래에 누군가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현재 지원금을 받는 사람이 스스로 미래에 부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재정지출의 효과는 없다. 현재 어리거나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이 부담을 지운다면 현재 재정지출의 내수진작 효과는 클 수 있지만 한국의 저출산율을 감안할 때 미래 세대의 1인당 부담은 현재의 25만 원을 훨씬 상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야당은 재원 마련 방안 등을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밝히고 추가적인 물가 불안 가능성, 현재와 미래 세 부담 분배 등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패했기 때문에 야당만큼 주목을 받고 있지는 않고 동력도 잃은 것으로 보이지만 여당도 결과를 엄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공약들을 발표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여당이 서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10%에서 5%로 인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맞춰 행정부가 이 공약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주지하다시피 부가세는 소득세, 법인세에 이어 전체 국세 수입의 3위를 차지하는 중요한 세원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돼 올해 법인세를 내지 않아서 국세 수입의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건전 재정을 지향한다는 여당이 부가세를 낮춘다는 모순되는 주장을 한 것이다.
여야는 선거 전에 급하게 발표했던 설익고 모순되는 경제정책들을 냉정하게 분석해 정파가 아닌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필요한 정책들만 남기고 정리해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국내 경제를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치인들이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버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경제정책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눠 대내 정책 불확실성이라도 줄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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