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꺼내 읽은 李 "여기 오기까지 700일"…비공개 땐 尹 주로 발언(종합)
尹·참모들 '협치' 상징 자주색 넥타이, 李·민주는 파란색…우엉차에 한과 곁들여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김영신 기자 = 29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회담에서 이 대표는 미리 준비해 간 원고를 꺼내 들어 윤 대통령 면전에서 '쓴소리'를 가감없이 쏟아냈다.
이어진 비공개 회담에서는 윤 대통령이 주로 발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발언 시간이 85%를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담은 약 20분 동안 언론에 공개된 가운데 진행됐고, 이후 2시간 가까이 비공개로 이뤄졌다.
이 대표는 양측의 인사말을 듣고 퇴장하려는 취재진을 향해 "퇴장할 것은 아니고"라며 멈춰 세운 뒤, 정장 주머니에서 원고를 꺼내 15분 동안 윤 대통령의 국정 기조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대표는 회담을 앞두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 등 시간을 아껴가며 모두발언 원고를 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민주당 관계자는 전했다. 이 대표가 준비해 간 원고는 A4 용지 10장 분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손님 말씀 먼저 들어야죠. 말씀하시죠"라며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먼저 "(국회에서) 오다 보니 한 20분 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 오는 데 한 700일이 걸렸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 국민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드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제가 드리는 말씀이 거북하실 수 있는데 그것이 야당과 국민이 갖는 이 정부 2년에 대한 평가의 일면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 국민들이 혹시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잡혀가는 것 아닐까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 뜻이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으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등 수위 높은 발언들도 나왔다.
이 대표는 현 정부 국정 운영을 두고 '시행령 통치', '인사청문회 무력화' 등이라는 평가가 있다면서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 회복 지원금'에 대해서도 "소득지원 효과에 더해 골목상권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크므로 꼭 수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윤 대통령은 "좋은 말씀 감사하다. 평소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 오던 얘기라서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며 "자세한 말씀 감사하다"고 짧게 답했다.
공개 부분에서 주로 이 대표의 발언을 경청하던 윤 대통령은 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되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회담 시간의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비공개 회담에서는 이 대표가 화두를 꺼내면 윤 대통령이 상당히 길게 답변을 했다"며 "(배석한) 천준호 비서실장이 계산해보니 85대 15의 비중으로 윤 대통령이 말씀을 많이 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처럼 윤 대통령도 발언에 필요한 근거 자료들을 준비해 왔다고 민주당 측은 전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모두발언에서 이 대표께서 길게 민주당과 이대표의 입장을 설명했기 때문에, (비공개) 대화는 그 발언에 대해 대통령의 답변 위주로 진행됐다. 두분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회담장에 검정 정장에 남색 넥타이 차림으로, 태극기 배지를 착용한 채 들어섰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이 이 대표 일행을 마중 나와 안내했고, 윤 대통령은 회담장 입구에서 이 대표를 기다리다가 맞이했다.
두 사람은 밝은 표정으로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내내 악수한 손을 잡고 있었고, 윤 대통령은 인사의 의미로 이 대표의 어깨를 가볍게 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날씨가 좋다고 인사를 건네자 윤 대통령은 "저와 이 대표님이 만나는 것을 우리 국민이 다 고대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날씨를 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가 평소 우엉차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날 우엉차와 한과, 과일 등을 준비해서 대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붉은빛이 다소 감도는 자주색 계열 넥타이를 맸고, 정진석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도 유사한 계열인 색의 넥타이를 맸다.
협치의 의미를 담아 여당인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이 섞인 색을 골랐다는 후문이다.
이 대표를 비롯한 참모 3명은 민주당 상징인 파란색 계열 넥타이를 맸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참모들은 집무실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회동을 마무리했다.
회동을 마치고 대통령실에서 이 대표에게 전달한 기념품 등 별도의 선물은 없었다고 민주당 측은 전했다.
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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