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기적의 8

기자 2024. 4. 2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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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것인가, 대화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첫 영수회담을 마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제 결심해야 한다. 두 사람은 계속 싸울 수도 있고, 대화할 수도 있다. 싸우고 싶으면 싸울 이유를, 대화하고 싶으면 대화할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내 싸우거나 대화할 수 있다.

가령, 이견이 없는 의대 증원, 국민연금개혁 문제에서도 차이를 찾아내 대립할 수 있다. 이견이 있는 채 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 25만원 지원금 문제를 두고도 합의 가능한 점을 찾아 타협할 수 있다. 정치란 구조적 제약을 넘는, 인간 의지가 작용할 수 있는 영역이다. 대결과 대화 가운데 어느 한쪽을 강제하는 필연성, 불가피성 같은 것은 없다. 선택에 달린 문제다.

두 사람은 개인적 성향, 사회적 경험, 직업적 경력상 대화보다 대결에 더 친화적이다. 자신의 성취를 이끈 것이 사적 욕망이든 신념이든 자기 열정 하나만을 믿고 오늘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대화가 어렵지 대결은 쉽다. 대결은, 시민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어도 감정적 만족감이란 연료만 채워주면 힘차게 내달리는 기관차와 같다. 그것도 정치 양극화, 정치팬덤이란 쌍발 엔진을 단 기관차다. 이 기관차에 어울릴 기관사가 누구겠는가?

물론 두 사람도 대화할 수 있다. 갑자기 대화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거나 정치적 각성을 해서가 아니다. 특별한 국면이 펼쳐지고 기회의 창이 열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총선 이전 쫓고 쫓기는 관계에서 총선 이후 방휼지세(蚌鷸之勢),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로 바뀌었다. 국가 차원에서는 행정권력 대 입법권력으로, 리더십 차원에서는 채 상병 특검법 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로, 개인적 차원에서는 김건희 특검법 대 김혜경 법인카드 문제로 1 대 1 팽팽하게 대립한다.

이렇게 교차하는 위험과 기회, 두 힘의 호각세는 8이라는 숫자에서 균형점을 이룬다. 국민의힘 당선인 108명은 공천 굴레에서 벗어났다. 대통령 지지율은 당 지지율보다 낮다. 대통령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졌다. 8명이 이탈해 민주당 손을 들어주면 윤석열은 거부권 무력화, 탄핵 저지선 붕괴라는 위기를 맞고, 이재명은 윤석열을 제어할 기회를 잡는다.

윤석열이 권력 방어를 하려면 8명을 지킬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독선, 독주, 즉흥적 국정, 압수수색 통치같이 지난 2년 내내 하던 일을 또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대 증원 문제를 고집하고, 특검을 거부하고, 친위세력으로 당 장악하는 일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의 25만원 지원 정책,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마약’ ‘전체주의’ ‘나라 망치는’이라니. 대책 없이 과격하고 혐오적인 표현,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습관을 고쳐야 한다. 이미 곳곳에 경고등이 켜졌다. 시간이 없다. 8명을 잃지 않으려면 바꾸고 되돌리고 포기해야 한다.

이재명도 8명을 확보하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8이란 숫자를 더하기 위해 다른 건 필요 없다. 상대당 지지를 정당화할 합리적 행동이면 충분하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설득과 동의의 정치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재명은 당대표를 연임하려 한다. 원내대표는 이재명 지킴이가 맡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당 안으로는 이렇게 이재명 유일체제를 굳히고, 당 밖으로는 여야 분배 관행을 무시한 채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을 벼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뒤 오만해져 정권교체당한 일을 잊은 것 같다. 국민의힘과의 총선 득표율 차이 5.4%포인트는 의지할 만한 숫자가 아니다. 그런 건 한 줄기 봄바람에 뒤집힐 수 있다.

시민이 선거를 통해 두 사람에게 보낸 신호가 왜 8일까? 경쟁과 협력, 견제와 조화를 통해 시민의 삶을 개선하라는 명령이다. 그 명령 이행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절제다. 자기 자원과 능력을 다 동원해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은 공존 가능한 이견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다. 칼을 쥐었다고 찌르고, 총을 가졌다고 쏘는 건 전쟁이지 정치가 아니다.

절제는 두 사람이 잘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누가 아는가? 8명을 잡으려는 두 사람의 경쟁이 대화와 협력의 정치라는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일으킬지.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겠지만, 일어난다면 8은 기적의 숫자가 될 것이다.

이대근 칼럼니스트

이대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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