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청장님, 아르테미스는요?

이정호 기자 2024. 4. 29.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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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 기지’라 하면 많은 이가 떠올리는 그림이 있다. 회색 황무지와 운석 충돌구 사이 반원 모양의 건물이 들어선 모습이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먹고, 자고, 연구한다. 최근까지도 이 모습은 언젠가 다가올 막연한 미래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7년 미국이 ‘아르테미스 계획’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달에 사람이 사는 기지를 지어 지구에선 찾기 어려운 광물자원을 캐는 데 목적이 있다. 먼 우주로 갈 로켓 터미널도 만들 계획이다. 2030년대부터 기지 건설과 운영이 본격화된다.

미국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국가의 기술력을 조합해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각종 개발 비용을 분담하려는 것이다. 달에 가기 위한 총체적 역량은 미진해도 어떤 분야에서 특출한 기술만 있다면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 국가는 달 자원 채굴을 중심으로 한 초기 우주경제 구축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2021년 5월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기로 미국과 정부 간 약정을 맺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국내 과학계에선 “지난 3년간 한국 정부가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겠다는 선언만 해놓고 실제로 한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계획에 참여한 일본이 월면을 누빌 자동차를, 영국이 달에서 전기를 만들 원자로를 개발하겠다고 나섰지만 한국은 뭘 할지 명확히 천명한 적이 없다.

2022년부터 달 상공을 돌고 있는 한국의 무인 탐사선 ‘다누리’의 6개 관측 기기 중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물 탐색용 카메라’가 포함돼 있기는 하다. 물은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필수재다. 다누리가 그런 카메라를 달로 수송하는 화물차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 정도를 두고 한국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한국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달에서 유용한 광물자원이 나와 경제적 이익이 생겨도 한국은 분배에서 소외될 수 있다.

지난주 대통령실이 발표한 윤영빈 초대 우주항공청장 내정자가 다음달 27일 취임 뒤 먼저 챙겨야 할 일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은 아르테미스 계획 참여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의 답답한 현실을 지적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소화할 방도가 불분명했다. 한국에는 우주개발을 전담하는 국가기관이 없었던 영향이 컸다. 하지만 곧 그런 역할을 할 우주항공청이 문을 연다.

우주항공청을 이끌 윤 내정자는 이른 시일 안에 한국이 어떤 기술을 내세워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역할을 찾을 수 있을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달 개척 정책에도 가닥이 잡힌다. 두루뭉술한 방향 제시는 지금도 충분히 많다.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목록이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초대 우주항공청장이 정치인 출신이기를 바라는 기류가 있었다. 우주 관련 정책을 조정하거나 예산을 확보하려면 그것이 낫다는 정서였다. 정통 공학자인 윤 내정자가 이런 걱정이 기우였다는 점을 증명하는 가장 빠른 길은 아르테미스 계획 참여 방향에 대한 혜안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선택이 10여년 뒤 달에서 한국이 받을 대접의 수준을 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차장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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