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대칭’을 깨트려 ‘질량’을 얻다[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기자 2024. 4. 2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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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신의 입자’ 남긴 피터 힉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만물의 ‘근원’ 탐구하는 역사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
19세기 과학자들 답은 ‘원자’
양성자·쿼크 등 17종 입자 등장
‘게이지 대칭성’으로 질량 부재
물질 구성 기본 원리 설명 안 돼
1964년 논문서 예견 ‘힉스 입자’
2012년 발견돼 ‘표준모형’ 완성
20세기 인류가 내놓은 모범답안
‘암흑물질’ 과학계 질문은 계속

“이 세상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이 행성에 출현한 이후 가졌을 법한 가장 궁금한 질문의 순위를 매긴다면 이 질문이 적어도 상위 3위 안에는 들지 않았을까 싶다. 내 말이 빈말이 아님은 철학의 아버지라 불렸던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가 보증한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명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이라는 답이 아니라 ‘만물의 근원’이라는 질문이다. 신화와 주술이 횡행하던 시절에 탈레스는 자연의 궁극적인 근원을 따져 물었다.

탈레스 이후의 철학자들은 충실하게 탈레스의 기획에 따라 자기만의 답을 제시했다. 엠페도클레스는 물에다 흙과 불, 공기를 더해 그 유명한 4원소설을 제시했다.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는 고대 원자론을 제시했고 피타고라스는 숫자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의 대답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만물의 근원을 추구했던 탈레스의 기획은 아직까지 늠름하게 살아 있다.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가장 진지하게 추구하는 분야가 바로 입자물리학이다. 이런 맥락에서 탈레스는 입자물리학의 원조라 할 수 있으며, 입자물리학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탈레스의 오랜 질문에 19~20세기의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1차적인 답은 바로 원자이다. 원자는 이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 중 하나이다.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인류가 파멸에 이르러 모든 과학지식이 날아가게 생긴 상황에서 후대에 단 하나의 문장만 넘겨준다면 최소 단어로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은 진술로 원자론을 꼽았다.

애초에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졌던 원자(atom)는 20세기 전후에 내부구조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원자 안에는 음의 전기를 가진 전자와 양의 전기를 가진 원자핵이 있다.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자핵은 다시 양의 전기를 가진 양성자와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자로 구성돼 있다. 양성자나 중성자는 통칭해서 핵자라 부른다.

한동안은 핵자들이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단위로 여겨졌으나 1960년대에 쿼크(quark)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이들의 조합으로 핵자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후 쿼크가 실험적으로 검증되면서 쿼크는 현재까지도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쿼크에는 u(up), d(down), c(charm), s(strange), t(top), b(bottom) 등 총 6종류가 있다.

한편 전자에게도 자신과 비슷한 형제 입자들이 있음이 밝혀졌다. 뮤온(muon)과 타우온(tauon)이 그들이다. 뮤온과 타우온은 음의 전기를 띠는 등 전자와 물리적 성질이 비슷하지만 질량이 훨씬 더 무겁다. 한편 이들 ‘전자 3형제’에게는 각각의 짝이 있다. 이들 짝은 모두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질량이 굉장히 작은 입자들로, 중성미자(neutrino)라 불린다. ‘전자 3형제’와 이들의 짝인 3종의 중성미자를 합쳐 경입자(lepton)라 부른다. 그러니까, 이 우주는 기본적으로 쿼크와 경입자로 구성돼 있다. 쿼크와 경입자는 물질을 직접 구성하는 입자들이다.

이밖에도 입자들 사이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가 있다. 빛, 즉 광자(photon)가 대표적인 사례로서, 빛은 전자기력을 매개한다. 우리 우주에는 전자기력 말고도 중력과 약한 상호작용(또는 약력)과 강한 상호작용(또는 강력)이 존재한다. 약한 상호작용은 원자핵의 붕괴에서처럼 입자의 종류를 바꿀 수 있는 힘이고 강한 상호작용은 쿼크들을 묶어 핵자를 형성하게 하는 힘이다.

이들 입자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은 게이지 대칭성(gauge symmetry)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수학적 대칭성을 도입하는 것이다. 게이지 대칭성이란 우리가 이들 입자를 기술하는 장(field)에 어떤 특정한 변화(‘게이지 변환’)를 주더라도 전체 이론이나 법칙에는 변화가 없는 성질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서울을 설명하든 남쪽을 바라보고 서울을 설명하든 서울이라는 실체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어떤 이론이 게이지 대칭성을 유지하려면 게이지 입자라는 새로운 요소를 도입해야만 한다. 게이지 입자는 그 이론 속에서 등장하는 불필요한 변화의 요소들을 자동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서울을 기술할 때 어떤 방향을 바라보든지 그 각도와 전혀 상관이 없다면, 서울을 기술하는 이론에 특정한 방향을 바라보는 각도가 등장할 때마다 그걸 모두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게이지 입자이다. 빛은 대표적인 게이지 입자이다.

문제는 게이지 대칭성이 입자들의 질량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쿼크든 경입자든 다른 게이지 입자든 질량을 가지지 않는다면 실험적 결과와 맞지 않으므로 현실적인 이론이 될 수가 없다. 현실적인 이론을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대칭성을 깨는 것이다. 애초에 대칭성 자체가 없는 것과 대칭성이 있다가 깨진 것은 크게 다르다. 후자의 경우 대칭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64년 35세의 피터 힉스는 두 편의 논문을 통해 대칭성이 깨지면서 어떻게 게이지 입자가 질량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힉스는 훗날 자신의 이름이 붙은 새로운 장, 즉 힉스장(Higgs field)을 도입했다. 힉스가 제시한 방법은 이후 힉스 메커니즘으로 알려지게 된다. 대칭성 깨짐으로 질량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초전도성을 설명하면서 이미 도입되었으나 상대론적인 이론에 적용한 것은 힉스가 처음이었다.

이 무렵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로버트 브라우트, 제랄드 구랄니크와 리처드 하겐과 톰 키블이 비슷한 아이디어의 논문을 제출했다. 그중에서도 힉스만이 힉스 메커니즘의 결과로 새로운 입자가 존재할 것임을 명시적으로 적시했다. 이 입자에는 힉스 입자(Higgs particle)라는 이름이 붙었다. 힉스 입자라는 작명은 이휘소 박사(벤자민 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정작 힉스 자신은 다른 여러 기여자들을 빼고 자신의 이름만 붙은 것에 불만이었다고 한다.

1967년에는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가 특정한 게이지 대칭성을 도입해 약한 핵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와인버그는 힉스 메커니즘을 적용해 새로운 게이지 입자들 중 하나는 질량이 없는 전통적인 광자로서 전자기력을 매개하고 나머지 게이지 입자들은 상당히 무거운 질량을 가지면서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할 것임을 보였다. 이들 새로운 입자가 W와 Z입자이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전자도 질량을 가짐을 보였다. 와인버그 모형은 지금 우리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라 부르는 이론의 근간을 세우게 된다.

표준모형은 말하자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20세기 인류의 모범답안이다. 여기에는 6종의 쿼크와 6종의 경입자, 그리고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광자와 약력을 매개하는 W 및 Z 입자, 그리고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강력을 매개하는 접착자가 있다. 그리고 이들 입자에 적절하게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과 관련된 입자인 힉스 입자가 있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던 탈레스나 4원소설을 제기했던 엠페도클레스에 비하면 17종의 입자가 상당히 많기는 하다. 표준모형은 이들 입자들에 대한 양자역학적인 장론(field theory)이다.

표준모형에서 예측한 입자들은 힉스 입자를 제외하고 모두 20세기에 발견되었다. 오직 힉스 입자만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으나 과학자들은 힉스 입자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하면 표준모형은 지금도 수많은 실험적 검증을 성공적으로 통과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2012년 유럽원자핵연구소의 거대한 입자가속기인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되었다. 힉스가 그 존재를 예견한 지 거의 반세기 만의 일이었다. 힉스 입자의 발견은 실험적으로 표준모형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이듬해에 힉스와 앙글레르는 처음 그 입자의 존재를 예견한 공로로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앙글레르의 공저자였던 브라우트는 안타깝게도 2011년 힉스 입자의 발견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힉스는 노벨상을 받은 지 10년여 지난 올해 4월8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힉스 입자의 별칭은 ‘신의 입자(God particle)’이다. 미국의 실험물리학자인 리언 레더먼이 힉스 입자와 관련된 책을 쓰면서 제목을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라고 했다가 출판사에서 ‘damn’을 빼고 ‘God particle’로 제목을 확정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힉스는 ‘힉스 입자’라는 명칭을 불편해했을 정도로 겸손하면서도 소박했으면서도 다른 젊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과학자였다. 2021년에는 와인버그가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살아 있을 때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서 표준모형이 실험적으로 완성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제는 힉스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입자물리학 역사의 한 장이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표준모형이 그토록 성공적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 우주를 모두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이 많다. 당장 표준모형으로는 중력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우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물질보다 5배 정도 더 많은 정체불명의 암흑물질(dark matter)이 존재하는 것으로 과학자들이 확신하고 있다. 불행히도 표준모형에는 암흑물질의 후보가 하나도 없다. 이와 함께 많은 다른 이유로 과학자들은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이 존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 새로운 물리학의 모습이 어떠할지 잘 알지 못한다. 베일에 싸인 새로운 물리학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21세기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제는 천상의 별이 된 힉스는 아마 그 실체가 뭔지 먼저 봤을지도 모르겠다.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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