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탐사K] 지적장애인 상대 억대 소송사기 성년후견인 구속
[KBS 제주] [앵커]
아직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중증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수억 원대 소송사기를 벌인 60대 남성이 구속됐습니다.
알고 보니 이 남성, 지적장애인인 피해자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성년후견인이었습니다.
탐사K 고민주, 부수홍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중증 지적장애인을 위한 제주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입니다.
지난 2021년 6월, 이곳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고 모 씨에게 빚을 갚으라는 법원의 지급명령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금액만 무려 3억 원 상당.
22년 전인 2002년 5월, 누군가 고 씨에게 빌려 준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한 겁니다.
법원에 제출된 서류엔 '고 씨가 돈을 갚겠다는 변제 각서를 적고도 전혀 갚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고 씨는 각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중증 지적장애인입니다.
심지어 3억 원 상당을 빌렸다는 2002년 당시 고 씨의 나이는 만 17살에 불과했습니다.
[장애인시설 관계자/음성변조 : "(당시에) 미성년자인데 어떻게 이런 많은 빚을 지지? 돈을 갚으라고 하는 명목에 보면 빚이 거의 용도가 건축 자재였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한 거죠."]
지급명령결정문에 따르면 법원에 돈을 갚으라며 지급명령을 신청한 남성은 50대 이 모 씨.
알고 보니 고 씨의 성년후견인인 60대 이 모 씨의 친동생입니다.
경찰이 이들 형제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한 결과 가짜 차용증을 이용해 소송사기를 공모한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고 씨에겐 수년 전 고인이 된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땅이 있습니다.
[김성훈/담당 변호사 : "상속을 받은 재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좀 허위의 채권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아마 지급명령 신청, 좀 간편한 독촉 절차 민사상 독촉 절차를 통해서 채권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경찰은 이들 형제가 고 씨에게 없던 채무를 만들기 위해 법원의 독촉 절차를 악용한 것으로 보고 소송사기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넘겼습니다.
[최광욱/서귀포경찰서 수사과장 : "(지급명령 신청하면) 채무자는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대응하지 않아 확정되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합니다. 본 건의 피해자는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이의신청을 진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피의자들이 이 점을 악용하여 허위의 채권을 바탕으로 지급명령을 신청해 확정판결을 받은 사안입니다."]
검찰은 혐의를 인정한 형 이 씨를 구속기소하고, 동생에 대해선 공모했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며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고민주입니다.
촬영기자:부수홍/그래픽:조하연
고민주 기자 (thinking@kbs.co.kr)
부수홍 기자 (mrboo8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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