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미래세대 구하는 일 [왜냐면]
김철홍 |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자유기고가
이혼하면서 가장 많은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 양육권과 양육비다. 협의 이혼을 하더라도 양육비 관련 문제는 추후에도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한부모는 소득 감소, 제한된 시간, 자녀 교육비 부담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런데 이혼한 뒤 아이를 기르는 양육부·모의 72.1%가 아이를 기르지 않는 대신 양육비 지급 의무를 가진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배드파더스’는 2018년 7월 누리집 개설 당시부터 “부모의 초상권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돼야 한다”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얼굴, 직업, 주소 등 신상을 꾸준히 공개해왔다. 배드파더스 운영자는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돼 국민참여재판 1심에서는 무죄, 검찰 항소 2심에서는 유죄를 받았다. 3년 동안 이어진 법적 논란은 올 초 대법원의 유죄 확정으로 끝났다.
그러나 배드파더스 개설 3년여 동안 900여 건의 미지급 양육비가 이행되는 등 파급력은 컸다. 배우자와 헤어졌다는 이유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사적 제재’ 논란에도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미지급 부모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2021년 7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 이행법)이 제정된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신상을 공개하고 출국을 금지하는 행정제재와 최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하도록 했다. 양육비 이행법이 시행된 뒤 여성가족부도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은 현재 공적인 절차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공개하는 양육비 채무자 명단에는 이름, 생년월일, 채무 금액 등 6개 항목만 있을 뿐, 얼굴 사진은 빠져 있다. 얼굴 사진 없는 공개는 실효성이 떨어져 양육비를 받기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제재를 받은 사람 가운데 양육비 전액을 준 사람은 4.6%에 불과하다고 한다. 제재에 따른 실질적 피해가 있어야 비양육자가 돈을 지급할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와 비양육부·모의 관계 단절을, 양육비 지급 회피는 아이에 대한 책임 회피를 의미하고 이는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정서적이고 돌봄 공백에 대한 문제”(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민사사건이 아니라 아동학대죄에 해당한다고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대부분은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 학대로 간주한다. 한부모 가정 가운데 양육비 채권이 있지만 지급받지 못해 생존권을 위협받는 가구는 약 1만7000가구로 파악되고 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한부모 가정을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비양육자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고 있을 때 국가가 나서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고 비양육자에게서 환수하는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이 가장 시급하다.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간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제도다. 지난 3월5일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양육비 선지급제를 조속히 도입하겠다”고 약속했고,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은 “양육비 선지급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와 징수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부처 협의를 조속히 진행해 내년까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빠르면 2026년부터 양육비 선지급이 이뤄질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하고, 미지급분을 어떻게 회수할지가 문제다. 선지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선진국 사례를 보면, 회수율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사회적 논란은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를 기르는 문제는 당연히 ‘우리가 함께 나눠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선지급제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이들을 안전망 안으로 끌고 온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회수율은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잘살든 못살든, 부모가 이혼을 하든 말든, 그건 어른의 문제다. 어른의 문제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아이는 약자다. 따뜻한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은 미래세대를 위하고 미래세대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문화 강국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법률 개정과 제도 시행에 초당적으로 협력해 아이들 마음의 응어리를 하루빨리 풀어주길 간절하게 소망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비공개회담 85%가 윤 대통령 발언”...이 대표 “답답하고 아쉬웠다”
- 이 “R&D 예산 복원 추경을”…윤 “내년 예산안에 반영”
- “이태원 희생양 찾지 말자”는 전 서울청장…판사 “영상 보면 그런 말 못해”
- “국힘, 공동묘지의 평화 상태…뺄셈정치·군림 DNA 등 병폐”
-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두고 물밑협상…극적 돌파구 찾나
- 국힘 비대위원장 돌고 돌아 황우여…당내 일부 “쇄신 의문”
- “금방 준다더니…임금 1300만원 떼여” 빚만 쌓인 코리안드림
- 류희림 방심위, 임기 석달 앞두고 ‘발언권 제한’ 규칙 개정 예고
- ‘김건희 디올백’ 목사 스토킹 혐의…경찰 “수사 필요성 있다”
- 4번 수술 끝 돌아온 교실서 ‘깜짝’…“이런 곳이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