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로 다 해결되진 않아요”

한겨레 2024. 4. 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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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닿는 곳마다 생기가 가득한 봄이다.

여름 휴가철이 오면 관광 업계가 분주해지고 날씨가 추워지면 옷 가게 주인이 발 빠르게 두툼한 외투를 걸어두듯이, 나도 매년 봄이 올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래서 나는 봄을 '자퇴 성수기'라고 부른다.

그러니 마음 한편으로는 애써 사연을 털어놓은 청소년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자퇴하고 나면 지금 학교 안에서 겪고 있는 문제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모든 게 좋아질 것'이라는 그 막연한 환상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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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학교 밖의 빛과 그림자
게티이미지뱅크

눈길 닿는 곳마다 생기가 가득한 봄이다. 여름 휴가철이 오면 관광 업계가 분주해지고 날씨가 추워지면 옷 가게 주인이 발 빠르게 두툼한 외투를 걸어두듯이, 나도 매년 봄이 올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봄이면 자퇴가 제철이기 때문이다.

봄은 학생들의 마음속에 ‘자퇴’라는 단어가 무럭무럭 자라는 계절이다. 이 시기가 되면 자퇴 문의가 폭주하고, 학교 밖에서의 삶을 다룬 내 책을 찾는 사람도 갑작스레 늘어난다. 그래서 나는 봄을 ‘자퇴 성수기’라고 부른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제공하는 검색어 트렌드를 보면 사용자의 연령과 기간에 따른 검색량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18살 이하 사용자의 자퇴 관련 검색어(중학교 자퇴, 고등학교 자퇴, 자퇴하는 법 등) 그래프를 찾아보면, 놀라우리만치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매년 봄, 즉 3월부터 5월 사이가 되면 검색량이 마치 탑처럼 치솟았다가 여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라앉는다. 2학기가 시작되는 가을에도 소폭 상승하지만, 매년 봄마다 세워지는 첨탑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많은 청소년이 1학기가 시작되는 시기마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새 학기가 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 여러모로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학교가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경우도 많을 터다.

나의 메일함에도 봄을 알리는 연락들이 속속 도착한다. 현재 학교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일과 자퇴하고 싶은 이유, 자퇴 후의 계획을 담은 장문의 메일들이다. 그리고 나는 열 번 중 아홉 번 정도는 자퇴를 만류하는 답변을 보낸다.

청소년들이 보낸 메일 사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문장은 바로 “자퇴하고 나면 열심히 할 거예요”다. 지금 당장은 출결이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자퇴 후에는 성실히 생활하겠다는 이야기다.

당연하게도 ‘학교생활을 성실히 하지 않던 학생이 학교를 떠나 갑자기 열심히 살게 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 안에서 성실히 생활하던 사람이 학교 밖에서도 성실할 뿐이다. 게다가 학교 밖에는 어떠한 규율도 제약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다잡고 삶을 꾸려나가는 것은 웬만한 성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오히려 학교에 있을 때보다 자기 관리에 더 큰 어려움을 겪기 십상이다.

내게는 ‘청소년들이 학교 밖의 현실을 잘 모른 채 학교를 떠나는’ 일을 막아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 그러니 마음 한편으로는 애써 사연을 털어놓은 청소년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자퇴하고 나면 지금 학교 안에서 겪고 있는 문제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모든 게 좋아질 것’이라는 그 막연한 환상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다. “학교생활에 성실히 임한 뒤 다시 고민해 보라”라는 조언은 덤이다.

자퇴는 나쁜 선택지가 아니다. 청소년들의 인생을 무분별하게 망치는 블랙홀 같은 존재도 아니다. 다만 ‘충분한 고민 없는 자퇴’는 자신의 미래를 걸고 도박판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정말이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농촌진흥청에서 매년 가을마다 ‘야생 버섯 함부로 먹지 마세요’ 캠페인을 벌이듯, 매년 봄마다 ‘섣불리 자퇴하지 마세요’라며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송혜교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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