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의혹도 정리하시길"… 李, 회담 시작부터 강공모드
김여사 특검법 사실상 요구
野 주장했던 의제 모두 언급
"국회서 어렵게 통과된 법안
거부권 행사로 입법권 침해"
尹, 이태원 특별법 거부 의사
◆ 영수회담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회담에서 무려 15분30초간 모두발언을 하며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각종 특검법 수용부터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는 물론이고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수용까지 사실상 요구했다.
이 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이 담긴 A4 용지를 여러 장 꺼내 취재진이 퇴장하기 전에 국민을 상대로 발언을 쏟아내는 방식을 취했다. 이 대표가 준비한 '총선 승리 청구서'는 야당이 대통령실과 실무회담에서 꺼냈던 의제를 거의 대부분 담고 있었다.
모두발언에서 "저는 정말로 대통령님께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란다"며 덕담으로 운을 뗀 이 대표는 곧바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갔다. 언론사 압수수색 문제를 꺼내면서는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한다"고 거침없는 표현을 내놨다.
특히 이 대표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수회담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이 대표가 김 여사 특검법을 윤 대통령 면전에서 거론할지였는데, 이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완곡한 표현으로 김 여사 특검법 수용까지 요구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이 대표는 채 상병 특검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수용도 건의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제1책무이다. 국가가 곧 국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59명의 국민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던 이태원 참사, 채 해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채 상병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대표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시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고, 정중하게 요청드린다"며 거부권 행사에 대한 '대국민 사과'까지 요구했다.
그는 "어렵게 통과된 법안에 대해 저희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거부권 행사와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이라든지 인사청문회 무력화와 같은 조치는 민주공화국의 양대 기둥이라고 하는 삼권분립,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일 수 있다"며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고 하시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이 같은 제스처가 이 대표에게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풀이됐다. 이 대표 모두발언이 끝나자 회담은 즉각 비공개로 전환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의 첫 공식 회담인 만큼 부담이 될 수 있는 김 여사 특검법을 윤 대통령 면전에서 거론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많았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국회의 수정을 역제안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그리고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는 공감한다"며 "다만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에서 영장청구권을 갖는 등 문제가 있기에 이런 부분을 해소하고 다시 논의한다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을 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윤 대통령의 입장에 다소 변화가 생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수정안을 다시 통과시킨다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독소조항'을 언급하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조사위가 조사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게 무슨 독소조항이냐"며 "정부 기관 등이 자료를 내지 않으면 검찰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서 (자료를) 받아달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것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조사활동 자체를 못하게 하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사실상 (특별법을) 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언급한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의혹 정리'에 대해서는 비공개 회담에서 추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 등도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러 특검법 문제에 대해 양측 입장 차가 좁혀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여전히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야당 전횡을 막을 최후의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행사 자제는 물론 사과할 사안이 전혀 아니라는 판단이다.
또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야당이 '총선 민의'를 앞세워 각종 특검법을 수용하라고 강요하면서 이를 국정 기조 전환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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