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보증금란은 공란으로"…주택임대관리업체 피해자 속출

노동규 기자 2024. 4. 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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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들 먹잇감 삼아 보증금 챙겨 잠적…정부 대응은?


SBS는 최근 한 주택임대관리업체한테 보증금을 뺏겼거나 약속된 월세를 못 받은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두 차례 보도했다.
("공실 나도 관리해 드려요" 믿었는데…보증금 '꿀꺽' 잠적 - 4월 17일 8뉴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615086&plink=NEWSNET&noredirect=Y][단독] '예치금' 둔갑한 보증금…"피해자 수백 명" 수사 착수 - 4월 26일 8뉴스) 임대인들은 "아무 신경 안 써도" 또박또박 월세를 보장해 준다는 말에, 임차인들은 "사기가 계속되는 전세보다는 안전할 것"이란 믿음으로 문제의 업체와 계약했다가 애를 태우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편익을 높인다"며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이들의 피눈물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626902&plink=NEWSNET&noredirect=Y]


주택임대관리업은 민간임대주택법에 근거를 둔다. 임대 목적 주택의 '시설물 유지와 보수, 임대료 징수, 임차인 관리 등'을 누군가 대신하는 사업을 법제화한 것이다. 변기 고쳐 달라, 보일러 갈아 달라, 신경 쓰이는 세입자 요구는 남이 대신 상대하면서 나는 세만 잘 받아간다면 민간의 임대주택 시장 참여가 활발해질 거란 기대에서 2014년 주택법에 먼저 도입됐다. 주택 소유자로부터 주택을 임차해 자기책임 아래 전대(轉貸)하는 '자기관리형'과, 수수료를 받고 임대차 관리를 대행하는 '위탁관리형'으로 나뉜다.

문제의 S프라임매니지먼트는 위탁관리형으로 서울 영등포구청에 등록했다. 피해자들의 불행이 시작된 지점이다. 자기관리형 사업자에겐 보증금을 삼키는 일이 없도록 반환보증 상품 가입 의무가 있다. 반면 S사 같은 위탁관리형 사업자에겐 이런 의무가 없다. 그런데도 S사는 "임대인은 아무것도 신경 안 쓰셔도 된다"며 위임장 하나 달랑 받아들고 전국 수백 명 세입자를 상대로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보증금까지 직접 받았다. 그러고는 잠적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20여 오피스텔‧지식산업센터 임대인과 임차인을 울리고 불안하게 하는 중이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22년부터 벌어진 S사의 영업 방식은 이렇다. 먼저 신축 오피스텔이나 지식산업센터 사전점검 현장에 판촉 공간을 마련한다. 임대인들에겐 "우리와 계약하면 공실이 나도 시세보다 많은 월세를 매달 드린다"며 접근한다. 한꺼번에 새 방이 쏟아져 나오는 곳에서 공실과 관계없이 다달이 돈을 준다는 말에 혹한 수분양자들이 '프리미엄 위탁관리'를 맡긴다. 약속한 금액이 몇 달간 들어오는 것을 본 임대인들은 안심한다. 그러다 2023년 가을 무렵부턴 송금이 끊겼다. 왜 그러느냐 묻는 집주인들에겐 "부동산 경기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 그렇다"며 둘러대고 "세입자에게 직접 세를 받으시라"고 한다. 자신들이 챙긴 보증금은 나몰라 했다. 졸지에 임대인들은 퇴거하는 세입자들에게 자신들이 만져본 적도 없는 보증금을 물어줄 처지가 됐다.


2023년 들어 S사의 영업은 더 대담해졌다. 오피스텔 등을 지어 분양한 시행사를 본격 이용했다. 시행사를 임대인으로 해, 미분양 등 이유로 시행사가 가진 물량을 '통째' 위임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따낸 자신들의 '물건'을 내세워 지역 공인중개사들을 공략했다. 부동산 앱에 뜬 '새 집'을 보고 찾아온 사회초년생들이 이들의 먹잇감이었다. 부동산 계약관계에 어두운 젊은이들은 구체적인 호실도 쓰여 있지 않은 채 뭉뚱그려 '○○오피스텔 각 호'를 위임받았다는 서류 한 장을 내민 S사 직원과 마주 앉아 도장을 찍었다.

이때 수법이 2022년과 다른 건 임대차 계약서 상 '보증금 난'을 공란으로 비워둔 점이다. 그곳엔 어디에도 계약 당사자인 S사가 보증금을 받았다는 얘기가 없다. 대신 S사는 세입자 돈을 받고 '예치 확인서'라는 걸 써줬다. 거기엔 예치금을 얼마간 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예치금은 임차보증금을 무상으로 정함에 있어 필요한 사항으로 오피스텔의 시행사 및 신탁사와는 무관함을 확인함"이라는 글귀가 씌어있다. '보증금도 아니며 임대인과는 무관하다'는 수천만 원을 챙기며 S사는 "이 돈이 보증금이다"라고 강변했다는 게 피해자들 주장이다. 계약을 거간한 공인중개사 역시 "예치금이나 보증금이나 마찬가지"라며 거들었다. 광주에서 올라온 25살 젊은이에게 수원의 한 공인중개사는 입회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쪽 지방은 원래 이런 말을 쓴다".


이토록 교묘한 말장난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해 가을, S사에 문제가 터졌다. 다른 임대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S사는 자신들에게 통째 계약을 맡긴 임대인-오피스텔 시행사-에게도 "세입자에게 직접 월세를 받으시라" 알렸다. 시행사는 대리인에게 생긴 사고를 세입자들에게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 대신 세입자 집 문 앞에 '입금 구좌 변경 통보' 문서를 한 장 붙였을 뿐이다. 거기엔 "S사가 임대료를 부실관리하여" 위탁서비스 계약을 해지했으니 앞으론 자신들에게 직접 세를 내라는 설명만 있었다. 저간의 사정을 알 길 없었던 세입자들은 바뀐 계좌로 성실히 세를 보내다가 퇴실을 앞두고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세입자들은 지금 시행사에게 임대인으로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사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니 S사에 따지라"는 입장이다. 회사가 보유한 '업무용'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불법 임대하는 사업을 맡긴 사용-피사용 관계는 명확하지만, 자신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 채 돈만 받았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시행사는 "S사가 자신들을 속이고 당신들도 속인 것"이라며 세입자들에게 단체고소 연명까지 받고 있다. S사를 '이행 보조자/피용자'로 내세워 생긴 일에 대한 고의나 과실 책임을 따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나이에 돈을 뜯겨 호소할 데 없는 피해자 일부는 시행사가 자신들 편인 줄 알고 여기에 서명을 해 주고 있다. 시행사는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S사 사건의 전모는 경찰 수사로 밝혀질 전망이다. 피해자들이 각 지역에서 제각각 고소를 한 상황이라, 중점 수사 경찰서 지정이 시급하다. 피해 규모와 함께 S사와 시행사, 공인중개사 사이 공모 여부 파악 등이 관건이다. 아직 임대차 기간 만기가 오지 않아 사건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도 S사는 일부 임대인이나 임차인을 상대로 "곧 돈이 나올 현장이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금원 반환 약정서를 써주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돈 나올 현장'이란 어디일까. 다단계, 폰지 사기가 떠오른다. 일부 임대인들은 S사가 빨리 돈을 마련해 자신들 돈만 갚아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건화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씁쓸함을 남긴다.

국토교통부는 늦었지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부 관계자는 SBS 첫 보도 뒤 '주택임대관리업체 관리를 잘 하라'는 공문을 각 지자체에 보냈다고 밝혔다. 개정 준비 중인 민간임대주택법 시행령에 개선 방안을 반영할 거라고도 했다. 앞서 지난달 국토부는 일정 규모 이상 오피스텔이나 임대형 기숙사를 관리하는 업체도 지자체 등록을 의무화할 거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진 공동‧단독주택을 대량 관리하는 업체에만 등록 의무가 있었는데 "규제 개선" 차원에서 오피스텔 관리를 양성화한다는 것이다. 등록 의무만 생기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지금 S사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업체들이 정부의 규제 개선 조치에 올라 타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꼼꼼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임차인들로선 임대차 계약의 최종 당사자인 임대인 확인과 세심한 서류 검토가 필수다.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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