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기술의 확장과 야구 ABS 논란

김창금 기자 2024. 4. 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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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철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기술의 확장은 인간관계를 바꾼다고 말한다.

원시 구술문화, 인쇄 문명, 전깃불 시대의 소통 방식이 달라진 것은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확장물 모두를 일컫는 미디어가 불러온 변화다.

매클루언은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할 때마다 그것을 향한 인간의 감각 비율이 조정된다고 했는데, 스포츠 세계에서는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중추신경 구실마저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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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철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기술의 확장은 인간관계를 바꾼다고 말한다. 원시 구술문화, 인쇄 문명, 전깃불 시대의 소통 방식이 달라진 것은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확장물 모두를 일컫는 미디어가 불러온 변화다.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 세계 최초로 자동볼판정시스템(ABS)을 도입했다. 심판은 오심의 공포나 스트레스에서 탈출했지만, 기계 판독 결과를 전달하는 확성기 구실로 위상이 낮아지면서 과거의 절대 권위를 잃었다. 공을 스트라이크존에서 잡은 듯 연출하는 포수의 능력도 옛 기술이 됐다. 구단을 상대로 높은 몸값을 받으려는 포수의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계 판정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이 나온다. 하지만 밀리미터(㎜) 단위까지 공의 스트라이크존 통과 궤적을 보여주는 로봇심판에 맞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심판이 전권을 쥐던 시절 스타 선수들이 받았던 암묵적인 판정 이득도 사라졌다.

축구에서 이뤄지는 비디오판독시스템(VAR) 또한 이해 당사자들의 관계를 바꾸었다. 판정 정확도는 높아졌지만, 관중이나 선수는 골이 나와도 심판의 눈치를 봐야 한다. 오프사이드나 반칙 여부를 체크하는 과정은 관전 문화와 선수들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주고 있다. 팬의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몰입도와 박진감의 강도가 낮아졌다.

지역별 특성이나 문화 차이가 스포츠 기술 미디어 수용에서도 편차를 드러낸다. 스웨덴축구협회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브이에이아르를 거부하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확인 불가능한 영역까지 판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팬이 느끼는 경험 자체와 그것의 의미화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관중과 선수, 심판 사이의 신뢰도와 존중도가 워낙 낮은 한국 사회에서는 축구의 브이에이아르와 야구의 에이비에스가 가장 빠르게 도입됐다. 협회나 연맹은 장비 도입과 운영 경비 등으로 수십억원을 지출해야 하지만 판정 잡음을 줄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매클루언은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할 때마다 그것을 향한 인간의 감각 비율이 조정된다고 했는데, 스포츠 세계에서는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중추신경 구실마저 대신하고 있다. 판독 결과를 맹신하거나 철저하게 의존하는 것은 중세 유럽의 종교처럼 또 다른 신앙이 되고 있다. 새로운 차원에서 계몽의 과제와 맞닥뜨린 듯하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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