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군의관에 개원의까지…‘의사 보충’ 총력전에 의료계 ‘냉랭’
공보의·군의관 추가 파견 방침에…의료계 “실효성 떨어져”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정부가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력 확충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중보건의사(공보의)·군의관 파견에 이어 개원의의 타 의료기관 진료까지 허용해 비상진료체계를 확대했지만 의료계 반응은 냉랭하다. 본인 병원을 비우고 다른 병원으로 진료를 나갈 개원의는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대형병원의 인력난에 대한 각종 임시방편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이란 비판도 커졌다.
29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 재난위기 '심각' 단계 기간 예외적으로 개원의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현행 의료법(제33조 제1항)상 의료인은 원칙적으로 의료기관 내에서만 진료해야 하지만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발생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정부의 인력 확보 기대와 달리 개원가의 참여는 저조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정부가 개원의의 타 병원 진료를 허용한 이후 지난 달 20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참여한 개원의는 전국 7명 뿐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에선 의원을 개원한 의사 1명이 상급종합병원에 지원했다. 경기도는 종합병원에 지원한 의사 2명, 대전은 1명이다. 부산은 의사 2명, 충남은 요양병원 출신 의사 1명이 병원급 의료기관에 지원했다.
의료계는 해당 대안을 두고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특히 '어떤 개원의가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을 버려두고 종합병원에 가겠느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산부인과 개원의)은 "대외적으로는 그럴듯한 대안 같지만 본인 병원을 남겨두고 다른 병원 가서 일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개원의협의회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협의회로, 동네 병의원을 개원해 운영하는 의사 약 4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개원의 접근성이 가장 높은 이유는 개원의가 그만큼 몸을 갈아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개원의도 주 6일씩 근무하는 의사들인데 본인 병원과 업무를 던지고 다른 병원에 도움을 주라는 게 상식적인가"라고 반문했다.
대형병원에 간다고 해도 도움을 주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 회장은 "동네에서 개원한 의사는 1차 진료를 하는 반면 종합병원에선 각자 스페셜 파트에 따라 전문 진료를 한다"고 짚었다. 이어 "같은 산부인과여도 대학병원에서는 난임, 분만 등 전문 진료과가 세분화 돼 있다"며 "넓은 범위에서 진료를 해온 개원의가 갑자기 3차 진료를 보는 건 한계가 있어서 대학병원이 요구하는 진료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병원마다 상이한 전자시스템을 숙지하는 것 또한 과제다. 경기도에서 내과를 개원한 의사 김아무개(50)씨는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 가도 제가 도움을 주기 어렵다"며 "병원별 EMR(전자의무기록)과 컴퓨터시스템을 단기간에 익히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현장 의료진과의 호흡을 맞추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MR은 환자의 진료에 대한 전자 형태의 의무기록을 의미한다.
공보의 추가 투입…'의료 취약지 역차별' 우려도
정부가 추가 파견을 검토 중인 공보의와 군의관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당장 이번 주부터 주요 대형병원이 주 1회 휴진에 돌입하면서 발생할 빈자리를 공보의로 채우는 데엔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공보의는 계약직 국가공무원으로 의사 자격을 가진 군 입영 대상자가 갈 수 있는 보충역 중 하나다. 이들은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역에서 공중보건 업무를 하는 의사로, 수련과정을 거치지지 않은 일반의가 대부분이다. 이번 의료대란 사태로 파견된 공보의 상당수는 병원 근무가 처음인 셈이다.
따라서 공보의 파견이 인력난 해결에 큰 효과가 없다는 게 현장 반응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응급이나 중환자에 대한 경험이 적은 공보의를 파견하는 건 사실상 의사 머릿수를 채우는 수준"이라며 "의료 현장과 공보의 모두에게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보의 차출로 지역 보건소에서는 정작 업무 차질이 빚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회장은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를 진료를 봐줘야 할 의사가 다 파견 나가면서 의료 취약지역은 더 방치되고 있다"며 "큰 병원을 살리기 위해 지역 병원을 희생시키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군의관·공보의 396명이 의료기관 63곳에서 지원 근무 중이다. 정부는 군의관 수요를 이날까지, 공부의 수요를 30일까지 조사해 추가로 파견할 계획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을 통해 "의대 교수의 사직이나 휴진에 따라 군의관과 공보의 추가 투입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들이 교수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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