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못 쉬었는데, 4개월치 월급 떼여”···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여전
한 달에 휴일은 단 이틀. 그마저도 겨울에는 휴일이 하루도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A씨는 한 농장에서 1년 2개월을 일했다. 농가의 창고를 ‘숙소’라며 내준 사장은 매월 31만원을 숙소비로 월급에서 떼갔다. 전기 열선이 방바닥 한편에만 깔려 있고, 단열재랍시고 벽에 붙여놓은 스티로폼을 쥐가 갉아먹은 숙소는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
사장은 지난해 9월부터는 월급조차 주지 않았다. A씨는 “은행에 돈이 많은데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곧 풀릴 거다. 금방 줄 테니 걱정말라”는 사장의 말을 믿었다. 쉬지 않고 겨우내 일했다. A씨는 4개월 반치 임금과 퇴직금, 미지급금을 합쳐 총 1300여 만원을 아직까지도 받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이주노동119가 29일 서울 중구 인권위 배움터에서 연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 및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A씨는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고, 사장은 5월 말까지 임금을 다 주겠다고 했지만 벌써 수십 번이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를 비롯해 토론회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일을 해도 돈을 떼이기 쉽고, 고발을 한 이후에도 돈을 돌려받기 위한 싸움을 해나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권위가 발간한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실태 및 구제를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국내에서 일하고 있거나 1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이주노동자 379명이 겪은 임금체불 횟수는 평균 1.09회다. 평균 체불 임금액수는 약 663만원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참여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72명 중 16.7%는 ‘2회 이상’ 체불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가 임금체불을 하는 이유를 “외국인이기 때문에 체불하더라도 넘어가거나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했다. 한국어 수준이 낮을수록 임금체불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더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임금체불 문제는 생존권을 침해하는 범죄라는 인식에 기반해 처벌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선영 인권위 이주인권팀장은 “돈을 벌러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이 본인의 월급을 한두 달 못 받는 건 그 노동자뿐 아니라 그 가족 전체의 삶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심각한 범죄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찬 김포이웃살이 신부도 “미국 등 외국에선 임금체불이 아닌 임금 사기, 임금 절도라는 개념을 쓴다”고 말했다.
이들은 복잡한 법적 절차·분쟁 중 체류자격 만료 문제·근로시간 입증 문제 등이 이주노동자들을 피해 이후에도 취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정부의 알선으로 사업장이 결정되는 ‘고용허가제도’로 입국한 노동자부터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체불로 인한 법적 절차 진행 중엔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체류자격이 부여돼야 한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4282040015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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