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는 왜 민희진 ‘배임’ 주장하나...이사 중도 해임 땐 풋옵션 행사 제한
실제 행동 없으면 배임 성립 어려워
이사 중도 해임 땐 풋옵션 행사 제한
이사 해임·경업금지 적절했는지 싸울 듯
국내 최대 연예 기획사 하이브가 뉴진스로 잘 알려진 계열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와 신동훈 부대표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26일 경찰에 고발했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하는 ‘고소’가 아니라 제3자가 하는 ‘고발’을 한 점으로 미뤄볼 때 피해자를 하이브가 아닌 어도어로 적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데뷔한 후 국내 연예계 최고 히트상품이란 평가를 받는 뉴진스를 성공시킨 민 대표가 회사를 껍데기로 만들어 하이브로부터 되사려는, 이른바 경영권 찬탈(簒奪·주권을 억지로 뺏음)을 하려 했다는 하이브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도어에 대한 배임이 성립되긴 어렵다는 게 법조계 대다수의 시각이다. 이런 점을 김앤장법률사무소(김앤장)를 선임한 하이브가 몰랐을 가능성은 작다.
그렇다면 애초에 하이브는 왜 민 대표에 대한 감사 카드를 꺼내 들어 배임으로 고발을 하는 수를 뒀을까. 민 대표가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과 하이브 공식 입장 등에 따르면 양측은 오랜기간 자체 기획한 아이돌의 데뷔 순서와 홍보 방식 등을 가지고 갈등해왔다. 지분관계가 없는 경영인이라면 하이브가 인사를 통해 해임 수순을 밟으면 되지만, 민 대표는 주주간계약을 통해 회사 지분 18%를 정해진 가격에 팔 권리(풋옵션)를 가지고 있고 경업(競業·영업상 경쟁함) 금지 약정도 맺고 있다.
통상 주주간계약을 맺을 때 회사는 의무재직기간을 정하고, 그 이전에 퇴사하면 풋옵션 행사를 제한하거나 대주주가 정해진 가격에 되 사올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안전장치로 넣는다.
법조계에 따르면 민 대표가 작년 3월 하이브와 체결한 주주 계약상 의무 재직기간은 2026년 11월이다. 민 대표는 어도어 지분 18%를 행사 시점 연도와 전년도 평균 영업이익의 13배 값에 발행주식 총수를 나눈 수준(올해 행사 기준 약 1000억원)에 하이브에 팔 수 있다. 계약상 18% 중 13.5%는 어도어 설립일로부터 3년 후, 즉 올해 말부터 하이브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업계 관행을 고려하면, 이 의무 재직기간 동안 회사에 다녀야 풋옵션을 계약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이브가 안전장치를 뒀을 가능성이 높다. 하이브로서는 민 대표가 의무재직기간을 못 채우고 ‘본인의 귀책 사유로’ 중도 해임된다면 그에게 줘야 할 약 1000억원을 아낄 수 있게 된다.
고한경 브라이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최대 주주와 소수 주주 사이 자금조달 목적이 아닌 주주간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소수 주주가 경영에 참여하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되, 대주주 입장에서 이를 통제할 필요가 있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우 소수 주주의 위약이나 퇴사가 발생했을 때 그 지분을 대주주가 일방적으로 인수할 수 있는 콜옵션이 안전장치로 들어간다”라며 “특히 소수 주주 위약으로 인한 퇴사는 콜옵션 금액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할 수 있고 단순 사임이나 퇴사는 그 시점 공정가치로 책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는 지난 22일 민 대표에 대한 내부 감사에 돌입하면서 30일 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민 대표를 해임하고 그의 측근으로 구성된 이사진도 교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민 대표 측은 이사회 소집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는 법원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를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할 전망이다. 법원은 절차상 문제가 없으면 이를 허가하게 되고, 이 경우 지분 80%를 보유한 하이브 측 안건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업무상 배임 혐의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뒤늦게 불송치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미 이사회에서 이사 해임이 결정되면 되돌리기는 힘들다. 민 대표가 이사 해임의 정당성을 따지는 법적 싸움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대기업과의 법적 분쟁으로 엔터업계에서의 커리어가 올스톱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부담 요인이다.
주주간계약 조항 가운데 민 대표가 주장하는 ‘노예 계약’에 해당할 만한 부분이 있었는지도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민 대표 측은 지분 18% 중 4.5%는 “하이브가 동의해야 팔 수 있으며, 주식을 1주라도 가지면 경업금지가 계속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하이브는 “매각 관련 조항의 경우 (주주간계약에서) 두 조항의 우선 여부에 대한 해석 차이가 있었다”고 밝혀, 민 대표 측이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지가 일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이에 민 대표 측이 경업금지 약정을 무효로 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원은 기업과 개인 간 경업금지 약정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지를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한다. 특히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금지에 대한 대가 ▲보호 가치가 있는 사용자 이익 등을 고려한다.
법조계에선 민 대표와 하이브가 맺은 5년간의 경업금지 약정은 업계 관행을 넘어서는 비상식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민 대표의 엔터업계에서의 평판과 성과, 회사에 입사한 후 매출과 수익에 기여한 정도를 고려하면 회사 입장에서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만 민 대표 주장대로 하이브가 4.5% 지분을 매수하지 않음으로써 경업금지를 계속 적용할 장치를 마련해 뒀다고 법원이 인정한다면 사실상 종신 계약에 해당하므로 무효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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