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 껐나 했더니 "산 넘어 산"…'전문의' 사직·휴진 으름장, 속내는?

박정렬 기자 2024. 4. 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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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2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정모(40)씨는 지난주 70대 어머니의 뇌동맥류 치료를 결정하기 위해 '큰 병원'을 수소문했다. 정씨의 어머니는 지난 2019년 뇌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뇌동맥류 진단을 받고 수년째 추적관찰 중이었다. 그러다 이달 초 다니던 종합병원(2차 병원)에서 혈관 형태가 달라졌다는 진단을 받고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에 가라며 진료의뢰서를 받았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치료가 어려울 것이라 걱정했지만, 뜻밖에 '빅5병원' (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중 한 곳이 2주 후 바로 외래 진료가 가능하다고 해 곧장 예약했다. 정씨는 "의사가 없어도 응급, 중증 환자는 초진(병원에 첫 진료) 환자도 받아주는 것 같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아이러니하게 경증 환자는 동네 병원에, 중증 환자는 큰 병원에 가는 의료전달체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기에 전공의를 대체하는 진료 보조(PA) 간호사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평균 입원 환자 수는 파업 이전의 70~90% 수준을 회복하는 등 의료 현장이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일 평균 일반 입원 환자 수/그래픽=윤선정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의 평균 입원환자는 2만3428명으로 전주 대비 1.2% 증가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전인 2월 첫 주와 비교하면 71%까지 회복했다.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전체 종합병원 입원 환자는 전주 대비 0.7% 증가한 8만8854명으로 전공의가 빠지기 전의 93% 수준까지 올라섰다.

정부가 5000억원을 투입하며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안간힘을 쓴 결과 중환자실, 응급실 치료 역량도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중환자실 입원환자는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7050명으로 2월 첫 주의 96% 수준이다. 응급실은 전체 408개소 중 393개소(96%)가 병상 축소 없이 운영 중이다. 전공의 비율이 30~40%로 높은 소위 '빅5 병원'은 평균 입원 환자가 평시의 60%대로 아직 낮지만 큰 변동 없이 소폭이나마 회복되는 추세를 보인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에 의대 교수의 심경을 전하는 자필 대자보가 붙어 있다. 전국 주요 대학병원에서는 교수들의 피로 누적으로 인한 주 1회 휴진 방침을 속속 밝히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각 수련병원은 지난달 20일 전공의가 집단 이탈하기 시작한 이후 선제적으로 진료 예약 변동을 통해 환자 수를 조절했다.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 치료·관리가 어려운 수술·입원 환자를 중심으로 진료 일정을 조율했다. 두 달간 복귀한 전공의는 소수에 그치지만, 병원은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하는 한편 진료 시스템의 변화를 꾀하며 '비정상의 정상화'에 안간힘을 써왔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 A씨는 "전공의는 교육·수련생 신분으로 전문의처럼 수술을 주도하지 않는다. 간호사도 교육과 실습을 충분히 하면 전공의를 대체할 수 있다"며 "정부가 시범사업을 통해 PA 간호사의 역할을 법적으로 보호한 것이 환자 수용 능력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 B씨도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전공의 이탈 이전의 최대 80%까지 의료수익을 회복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간호사·의료기사·행정직 등 병원 구성원 대상의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환자들도 '한산한 대학병원'에 점차 적응해간다. 전공의 이탈 기간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30대 아토피피부염 환자는 "4~6주 간격으로 병원에 오는데 환자가 거의 절반은 준 것 같다"며 "진료 대기가 거의 없어 오히려 만족스럽다"고 했다.

의대정원 증원을 놓고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인턴 숙소가 텅 비어있다./사진=[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문제는 의료 현장을 지키던 의대 교수의 사직과 주 1회 휴진 결정이다. '빅5 병원'을 포함한 주요 대학병원이 오는 30일부터 주 1회 '셧다운'을 결의하면서 실제 환자가 체감할 수준의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전공의는 PA 간호사로 대체할 수 있지만 전문의, 그것도 중증·응급 환자 치료 경험이 풍부한 대학 교수급 의료진을 채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B씨는 "의대 교수들이 한꺼번에 이탈하면 불완전하게나마 회복되던 대학병원 진료 기능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며 "산 넘어 산"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의대 교수들이 업무 부담과 환자 안전을 이유로 사직·휴진을 결정했는데, 한편으로 병원이 안정화되면 전공의 복귀가 요원해질까 걱정하는 측면도 있다"며 "정부가 진료 유지의 '명분'을 위해서라도 당직을 서는 전문의 인건비만이라도 즉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한 재정 지원은 5월 중순까지 가능한 상태"며 "이후 지원 규모와 항목 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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