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 일반인 500배’…트라우마센터장이 말하는 오월의 상처 [영상채록 5·18]

류성호 2024. 4. 2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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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권
-1958년생
-광주트라우마센터장
-전 광주광역시 서구 보건소장


김명권 광주트라우마센터장

광주트라우마센터를 가려면 광주광역시 도시공사 건물을 찾아야 합니다. 트라우마센터는 광주 도시공사 10층에서 더부살이 중입니다. 내부에 들어섰더니 김명권 센터장과 직원들이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센터장을 포함한 전체 직원은 13명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상담하고 치료하는 이들의 섬세함이랄까, 몸에 밴 상냥함과 친절함이 느껴졌습니다. 김명권 센터장을 통해 오월의 상처는 어떠한지, 치유활동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오월증후군' 5·18 이후 세대까지 전이…5월 되면 아픈 광주

통상 어떤 큰 사건 뒤 그즈음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을 두고 김명권 센터장은 '기념일 반응'이라고 불렀습니다. 5·18엔 '메이(may) 신드롬', '오월증후군'이란 명칭이 따라 붙습니다. 공포와 슬픔, 우울과 불안, 죄책감 등이 복합적으로 섞인 '오월증후군'은 어떻게 나타날까.

일부러 생각지 않는데 불현듯 자꾸 그게 반복돼 생각나는 경우, 자기 분노가 조절이 잘 안 되고 너무 우울하고 과몰입되는 과각성(자극에 과하게 반응하는 상태), 사람과의 관계를 않고 숨으려는 회피… 자료에 의하면 5·18을 경험하셨던 분 중에 구타, 구금, 총상, 수감됐던 분들의 자살률이 일반 사람들보다 약 500배 정도 높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문제는 '오월증후군'이 옆 사람에게 옮겨간다는 사실. 실제 5·18을 겪지 않은 5·18 이후 세대에서도 나타난다는 겁니다.
경험한 분들뿐만 아니라 젊은 분들도 왠지 5·18 무렵이 되면 불안하고 우울하고 분노를 느끼는 증상이 보여집니다. 트라우마가 세대 간에 전이되는 현상이 침팬지 실험으로 밝혀진 바 있고, 관련한 논문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5·18 국립묘지를 참배한다든가, 자기 주변 가족이나 희생된 분 유가족들 만나는 기회를 통해서 5·18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부당한 국가 권력에 희생당한 분들에 대한 추모 마음들도 생기고 하면서 심리적으로 좀 가라앉는 증상들을 보이는 것이죠.

광주트라우마센터 등록한 피해자는 약 1,220여 명. (최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민간인 166명 사망, 2,617명 상해, 179명 행방 불명으로 직권조사 과제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트라우마센터는 이분들을 대상으로 심리평가 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달력을 만드는 활동, 식물을 기르는 원예 치유, 난타와 합창단 등 음악 활동을 통한 치유 프로그램, 몸에 좋은 차를 같이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한방 치유, 온천수 치유, 또 여러 운동 등 각자에게 맞는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국가폭력, 가해자가 국가이니 국가가 책임져야!"

조심스런 얘기지만, 김 센터장은 국가폭력 실행자로 지금은 '가해자'로 불리는 당시 진압 군인과 경찰도 크게 보면 피해자여서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5·18 경험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 경험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부당한 국가 공권력이 상처를 줬으니, 치유도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치유를 위한 전제 조건, 선행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그 다음에 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에서 규정한 대로 마땅한 처분이 떨어져야 하고 그로 인한 배상이나 보상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고요. 그러나 배상과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것과는 완전한 별개의 것입니다. 기념사업과 명예회복 사업이 트라우마 치유프로그램과 연계돼서, 그분들이 트라우마 치유를 통해 삶의 질이 좋아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국가에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늬만 '국립트라우마센터'…치유 공백 우려

국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립국가폭력 트라우마치유센터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2022년 6월 시행)에 따라 오는 7월 옛 국군광주통합병원 자리에 '국립국가폭력 트라우마치유센터'가 들어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갑니다. 5·18은 물론 4·3을 포함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형제복지원 피해자 등 국가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치유 전체를 담당하는 전국의 유일한 기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애초 설립 용역을 통해 직원 60명, 1년 운영 예산 6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지만, 정부는 인원과 예산을 대폭 줄였습니다. 정부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사실상 '광주시립' 형태로 운영해온 광주트라우마센터 수준인 직원 13명, 예산 13억 원으로 묶어놨습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센터 문을 여는 게 중요해 올해 광주시 추경으로 예산 5억 원을 지원하지만 국립기관인 만큼 앞으로는 국가가 운영비를 전액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7월에 문을 여는 국립국가폭력 트라우마치유센터에 광주시는 공무원 4명을 파견했고, 행안부도 원장을 내정해서 내려보냈다지만 1년짜리 계약 연장으로 10여 년간 피해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광주트라우마센터 직원 13명의 자리는 없습니다. 무늬만 '국립'인 트라우마 센터에 여전히 국가 책임은 없고, 공무원 자리만 느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임기 종료를 앞둔 김명권 센터장은 이미 퇴임 나이가 된 본인은 빼고 적어도 직원들만큼은 고용 승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트라우마 치유를 연구하는 학자나 연구자들은 많지만,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분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제 생각으로는 우리 센터 직원 열세 분이 모두 다 국립으로 전환될 때, 고용 승계가 안정적으로 되어서 센터에 등록한 많은 회원분도 이미 관계 형성이 되어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국가에서 더욱 질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트라우마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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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호 기자 (menba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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