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91%는 폐기물…기후 위기와 '플라스틱'은 한몸통
우리는 기후 위기와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다.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150만톤에서 2019년 4억6000만톤으로 70년 동안 약 306배 이상 급격하게 증가했다. 누적된 플라스틱 생산량의 절반 이상은 2000년 이후에 생산된 것으로 파악됐고, 2000년(2억3400만톤)부터 약 20년 동안에도 연간 생산량은 두 배나 급증했다. 또한 약 40년 후인 2060년에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2019년보다 3배가량 증가한 12억3000만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 생산된 플라스틱 중 절반가량은 이른바 선진국(OECD 회원국)에서 만들어졌다. 1인당 연평균 플라스틱 사용량은 미국이 221kg으로 가장 많고, 유럽 국가들이 114kg, 한국과 일본은 각각 69kg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선진국 중심으로 생산·소비된 플라스틱이 앞으로는 신흥경제국에서 사용량이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6배, 아시아 국가들은 3배 더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인류 역사에서 플라스틱은 철(3500년), 종이(2200년)에 비해 사용된 역사는 짧지만, 뛰어난 특성으로 철, 목재, 유리, 종이, 면화 등 천연자원을 빠르게 대체했다. 플라스틱은 44%가 포장재로 사용되고 있고, 건축재 18%, 자동차 부품 8%, 전기·전자제품 7%, 가정·레저·스포츠제품 7%, 기타 12%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에서 플라스틱이 아닌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에 이어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스틱, 과도한 생산·소비 후 91% 폐기물…인류세 특징
플라스틱의 과도한 생산과 소비는 폐기물 급증으로 이어진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2000년 1억5600만톤에서 2019년 3억5300만톤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플라스틱은 사용된 뒤 대부분(91%) 버려진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다. 19%는 소각되고 50%는 매립되며 나머지 22%는 통제되지 않는 쓰레기장에 폐기되거나 노천 구덩이에서 소각되거나 환경으로 누출된다. 2019년에는 플라스틱 쓰레기 610만톤이 수생환경에 침투했고, 이 중 170만톤은 바다로 들어갔다. 현재 바다에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약 3000만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스틱은 화학물질로 이뤄져 있어 분해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버려진 플라스틱은 토양, 하천, 바다 등을 오염시킨다. 또한 잘게 부서져 인체의 혈액 속, 모유, 우리의 공기 중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사람의 손실이 닿지 않는 야생 동물의 분변에서부터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와 가장 높은 산, 북극 공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질학적으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시대인 인류세의 특징을 나타내는데 플라스틱이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질학자들은 플라스틱층이 화석 기록에 이미 축적되기 시작했다는 관찰 결과를 발표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어구·어망 성분의 플라스틱이 녹아 다른 암석과 결합한 플라스틱 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기후 위기 막으려면 플라스틱 생산 46~70% 줄여야
플라스틱은 기후 위기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플라스틱은 석유 원료를 통해 플라스틱을 제조하고 가공하는 과정은 물론 소비, 수거, 처리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플라스틱 생산단계에서 매년 약 10억톤, 가공단계에서 약 5억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플라스틱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의 3.4%를 차지한다.
플라스틱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플라스틱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도 2019년 18억톤에서 2060년 43억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태평양 환경(Pacific Environment)’의 연구에 따르면, 1.5도 이하로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유지하려면 205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을 2019년 대비 46~70% 감축해야 한다. 여기에 생물다양성과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2040년까지 최소 75% 이상을 감축해야 한다.
한국 상황은 어떨까. 그린피스가 지난해 3월 내놓은 ‘2023년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를 보면, 2021년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총 1193만톤으로 2010년보다 약 2.5배 증가했고, 코로나19 이전인 2017년 대비 1.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플라스틱 중 배달음식 포장재를 포함하는 ‘기타 폐합성수지류’ 배출량은 2021년에 하루 평균 1292.2톤으로 2019년(715.5톤/일)보다 80.6%나 급증했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1인당 연간 생수 페트병 109개(1.6kg), 일회용 플라스틱컵 102개(1.4kg), 일회용 비닐봉투 533개(10.7kg), 일회용 플라스틱 배달용기 568개(5.3kg)를 사용하고 버렸다. 2017년과 비교하면 생수 페트병은 14%,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57%, 일회용 비닐봉투는 16% 증가했다. 네 가지 일회용품만으로 1인당 1년에 약 19kg의 플라스틱을 써버린 셈이다. 이를 무게 단위로 환산하면 2020년 기준 생활계 폐기물의 약 20%에 달하는 양이다.
한국, 일회용품 사용량 급증…'탈플라스틱' 정책, 나홀로 역주행
한국도 재활용, 소각, 매립 방식으로 플라스틱 폐기물을 처리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73%에 달한다. 세계 평균(9%)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의 플라스틱 재활용률(32.5%)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는 재활용 범위와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EU는 폐기물을 에너지화한 에너지 회수를 재활용에 포함하지 않는 반면 한국은 이를 재활용 범주에 포함한다. EU의 기준에 따라 계산하면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27%로 크게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탈플라스틱’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환경부는 2019년 대형매장에서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한 이후, 2022년 11월부터 일회용품 규제책으로 종이컵·플라스틱빨대·젓는막대, 비닐봉투 등의 사용을 금지하되 비닐봉투, 플라스틱빨대, 젓는막대, 종이컵에 대해서는 1년간 계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7일 계도 중이던 해당 일회용품의 사용 금지를 철회했다. 이와는 반대로 전 세계 120여 개가 넘는 국가들은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EU는 일회용품 사용규제 지침을 제정하고 2021년부터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고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를 확대 시행했으며 ‘플라스틱 포장세’를 부과하고 있다. 캐나다는 2022년 12월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 법안을 시행했고, 호주도 2021년 플라스틱 감축법을 제정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중국도 2018년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금지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분해되지 않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판매·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올해 11월 부산에서 최초의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정
지난 4월 23일~29일 캐나다 오타와에서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내용을 결정하는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가 열렸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에 관한 국제 협약을 제정함으로써 폐기물 처리 위주였던 기존 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플라스틱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력을 도모하는 협약이다. 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5)에 참석한 175개국은 국제사회가 직면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말까지 플라스틱 전 수명주기를 다루는 구속력 있는 최초의 국제협약을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정부간협상위원회(INC)’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세부 규제와 이행 및 재원 방안에 대해 국가간 이견을 조율하는 자리다. 올해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마지막 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를 통해 최초의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만들어진다. 국가별로 플라스틱 생산 감축 vs. 재활용 우선, 법적 구속력 지닌 협약 vs. 자발적 목표 수립 등으로 이견이 있지만, 어떤 수준의 내용과 방식으로든 신규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관한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순환경제사회를 고려한 탈플라스틱법 제정 필요
한국 정부도 플라스틱 오염 종식 및 순환경제 전환을 선도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힌 만큼 강력한 협약이 체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환경부는 2022년 ‘전 주기 탈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하고 2024년부터 본격화할 유엔 플라스틱 협약에 대비하고 탈플라스틱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2021년 대비 20% 감축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철회하고 미세플라스틱 규제책을 마련하지 않는 등 엇박자를 내고 있다.
2024년 1월 1일부터는 자원의 생산·소비·유통 전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순환경제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원순환기본법’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으로 전부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순환경제 전환 촉진법은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폐지, 폐금속, 폐유리 등 순환자원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플라스틱에만 필요한 정책 방안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한국의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과 유사한 ‘순환형사회형성추진기본법’이 있음에도 ‘탈플라스틱 법’이라 불리는 ‘플라스틱의 자원순환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2022년 4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올해 말에 채택할 예정인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모든 회원국이 순환경제를 고려한 플라스틱 생산·소비 관련 조치를 포함하는 국가 법령 체계 도입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총선에서도 주요 정당이 일제히 '탈플라스틱' 공약을 발표했던 만큼 오는 5월 30일 시작되는 22대 국회에서는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제안하는 '(가칭)플라스틱 자원순환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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