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돌보는 존엄한 삶, 돌봄 공공성으로 보장하라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서울시민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돌봄기관이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은 공공돌봄 시장화 기조 아래 예산을 대폭 삭감하더니, 급기야 지난 4월 26일 서사원 폐지 조례를 통과시켰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 폐지 조례안을 승인할 경우 우리 사회 공공성은 심각하게 후퇴할 것이며, 그로 인한 피해는 여성과 이용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아동과 장애인, 고령자를 비롯해 돌봄 이용자의 권리가 크게 후퇴할 것이며, 이미 독박돌봄 노동을 수행해 온 여성에게 더 많은 무급노동이 전가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다시 민간 일자리에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서울사회서비스원 폐지 조례를 반대하는 각계의 목소리를 연재한다. 편집자
지난 2월 5일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이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서사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안’(이하 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강석주 의원은 서사원이 “당초 설립 취지와는 달리 공적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으로서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서사원은 ‘공공돌봄의 기능’ 자체가 현저히 부족하고 그 수혜조차도 0.23%의 서울시민에게 한정될 뿐 ”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예산 보장, 적극적인 서비스 홍보, 실제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과 현장에서 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서사원의 설립 취지를 다시 한번 상기하며 공공성 담보를 위해 어떤 계획과 역할을 수행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서사원 폐지의 흐름 속에 돌봄과 관련된 사회서비스 전반을 민간에 위탁하며 정부의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방식은 공공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결국 서울시의회는 4월 26일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조례 폐지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서로 돌보는 존엄한 삶을 위해서는 정부가 돌봄 공공성을 보장해야만 한다.
서로 돌보는 사회가 필요하다
중증 장애여성인 나는 활동지원사의 지원없이 일상을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돌봄을 받는 일이 익숙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돌봄이 자신의 삶에서 익숙하고 가까운 일이라고 여겨질까? 어떻게 돌봄을 주고 받고 있을까? 아프거나 병원에 입원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돌봄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낄 수도 있다. 돌봄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사회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익히는 일이지만 장애인, 어린이, 노인,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돌봄의 대상으로 호명되어 시설에 갇혀 살아왔다. 돌봄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보편적인 권리가 아닌 동정과 시혜의 기반한 법제도로 자리잡았다. 책 <돌봄과 인권>에서는 “돌봄의 필요와 욕구를 권리로 해석하는 것은 돌봄을 정의로운 관계 속으로 이동시킨다. (중략) 인간의 보편적인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근거로 인권은 돌봄으로서, 돌봄은 인권으로서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취약성과 의존성이 특정한 인구 집단을 구분하여 시민의 자격을 박탈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조건으로 상호돌봄이 권리로서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 돌봄의 가치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돌봄노동은 가족, 특히 여성에게 떠넘겨졌다.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은 보장되지 않고 개인의 선한 의지만을 강요했으며, 돌봄받는 이들의 선택권과 존엄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정부는 돌봄사회를 위한 공공성을 확장하는 제도를 만드는 대신 돌봄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돌봄의 부담을 책임지도록 방치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정부는 장애인 거주시설을 코호트 격리 조치했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장애인은 감염병 확산을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생존을 위협받았다. 끼니를 챙기고, 몸을 씻고, 화장실에 가는 기본적인 지원이 불가한 상황에서 존엄한 돌봄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코로나19로 사회전체가 겪은 위기 속에서 돌봄은 더이상 취약계층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누가 돌볼 것인가, 나는 누굴 돌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했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공공의 역할은 절실했다.
함께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돌봄 공공성
국가가 돌봄을 가족, 시설, 민간에 위탁하고 돌봄노동을 저평가하는 문제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이용인의 돌봄공백 상황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발달장애여성인 A님은 고령의 어머니와 거주하면서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했으나 당시 함께 사는 가족과의 갈등으로 연계가 중단된 상황이었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는 시기에 어머니가 갑자기 입원을 하면서 A님을 돌볼 다른 가족이 없었고, 주민센터에 ‘보호자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자격기준에 맞지 않아 이용할 수 없었다. 당장 돌봄이 필요했던 A님은 서사원의 긴급활동지원을 신청한 후 평일 오전과 오후 시간 돌봄지원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코로나19 확산의 영향도 있었지만 A님은 구어로 의사표현이 어려운 지체발달중복 장애여성으로 활동지원사를 연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용인의 장애정도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열악한 임금체계는 국가가 돌봄노동의 가치를 불인정 해온 문제와 맞물린다. 따라서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민간이 모든 돌봄을 책임지면서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사원은 이용인의 생존과 안전, 돌봄의 공백을 책임지는 유일한 대안이었고 A님 또한 서사원 연계로 공백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사원이 연계하는 평일 오전과 오후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돌봄SOS, 활동지원사 대체인력 등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지만 한시적인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실제로 활동지원현장에서 종합조사표의 한계로 내가 필요한 시간만큼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문제가 가장 크다. 하지만 서비스 이용 시간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A님과 같이 중증장애가 있어서, 시간이 너무 적어서 등 연계가 지속되지 않는 경우에도 서사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B님은 탈시설 이후 활동지원사와 함께 있을 때 자해를 하거나 화장실 이용을 불편해 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시기 활동지원사와 잦은 연계종결로 돌봄 공백이 생겼고 서사원을 통해 긴급 연계를 시도했으나 활동지원사의 인력 부족으로 지원받을 수 없었다. 장애여성공감은 B님의 긴급지원과 관련하여 지원주택, 지자체와 면담을 진행하며 서울시와 강동구, 연금공단을 대상으로 24시간 돌봄을 지원할 수 있는 대안 요구했지만 제도의 한계로 불가했다. 공감은 서사원이 예산을 이유로 이용인의 긴급지원을 역할을 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며 서울시가 돌봄의 공공성을 확대할 의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왜, 지금 모두를 위한 상호 돌봄의 권리가 필요한가
활동지원, 장기요양 등 돌봄노동 현장 곳곳에 많은 이주여성, 노년여성들이 일하고 있다. 정부는 “내국인 인력이 줄고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저출산에 대응하며 여성의 경력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는 무책임한 말로 이주여성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 여성에게 떠넘겨진 돌봄노동을 전가하고 이주여성의 노동력을 차별하는 자본주의적 논리였다. 나를 돌보는 활동지원사가 국적이 다르단 이유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다면 내가 필요한 욕구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더 차별하는 구조를 발판 삼아 돌봄 공백을 채워간다면 돌봄 받는 장애인의 삶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 돌봄관계를 협소하게 보는 제도의 빈틈으로 생기는 차별은 이용인과 활동지원사 간의 불안과 갈등을 만든다. 그러나 사적관계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될 때 이용인과 활동지원사는 연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말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이용인과 활동지원사는 단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하는 관계가 아닌, 상호의존의 관계와 권리로 돌봄노동의 구조 자체를 균열내는 동료이다.
돌봄은 상호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돌봄을 주고 받는 이중 한쪽의 인권이 위태로워지면 다른 한쪽에 영향을 준다. 장애인이 받는 돌봄이 보호 받는 위치에서 통제가 일상화되거나 무능력한 대상이 된다면 활동지원사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례로 활동지원사가 휠체어를 탄 이용인과 외출할 때 이전에 보지 못한 차별적인 시선을 받거나 식당의 출입거부를 당하는 등 특정 공간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활동지원사의 돌봄노동이 존중받지 못할 때 장애인에게 필요한 돌봄 정책과 지원도 나아질 수 없다.
사회는 장애여성인 나에게 ‘돌보는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매일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돌봄을 말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돌본다. 활동지원을 받기 위해서 내 몸을 설명하고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몸의 움직임, 노동시간과 역할에 대한 의견 조율 등 수시로 변화하는 역동 속에서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힘들지만 갈등을 피하지 않는 투쟁을 이어간다. 서사원 조례 폐지안이 가결된 지금, 돌봄 공공성을 위축시키며 돌봄을 주고 받는 이들의 존엄과 권리가 무시되는 상황이 분노스럽다. 폐지에 앞장선 서울시의원에겐 과연 돌봄이 필요 없는 것일까? 그들은 권력과 자본이 더 많아서 돌봄이 필요 없는가? 좀 더 편리하게 돌봄노동을 구매할지 모르겠으나 그들에게도 늘 돌봄은 필수적인 권리이다. 자신들이 가결한 결과가 스스로의 존엄도 침해한 결과임을 분명히 알아야할 것이다. 나는 동료시민들과 돌봄을 주고받을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서로 잘 돌보고 의존하는 사회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성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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