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오락가락’ 흰부리딱따구리 멸종사…살아있니?

한겨레 2024. 4. 2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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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16 네스호의 괴물과 딱따구리의 비밀 사건 1
흰부리딱따구리 암컷과 수컷(오른쪽). 게티이미지
80년 전 멸종된 흰부리딱따구리가 미국에서 발견됐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나는 조직의 내부에 있는 사람입니다. 딱따구리는 ‘네스호의 괴물’과 연결돼 있어요. 혹세무민하는 거대한 사기극을 밝혀주십시오. 제보자 K

“이거 무슨 말이죠?”

“딱따구리와 네스호의 괴물이라니… 기이한 조합이군.”

홈스가 창문을 닫으며 말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어요. 6월에 시작한 마른장마가 벌써 두 달을 지나고 있었죠.

“우선 흰부리딱따구리부터 알아봐야겠군요.”

부리가 상아를 닮았다고 해서 ‘상아부리딱따구리’로도 불리는 흰부리딱따구리(Ivory-billed woodpecker·학명 Campephilus principalis). 왓슨이 컴퓨터에 앉아 구글스콜라(학술정보 사이트)를 뒤졌습니다. 딱따구리에 대한 논문이 프린터에서 뽑아져 나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들의 몰락

딱따구리는 딱따구리목 딱따구릿과에 속한 240종의 새들입니다. 부리로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고, 나무를 두들겨 만든 구멍으로 나무 속에 둥지를 만드는 특징이 있죠.

일반적으로 참새를 조금 능가하는 작은 몸을 지녔지만, 몸길이 45~55센티미터의 대형 딱따구리는 큰 덩치와 눈에 띄는 깃털 색으로 카리스마를 지녔어요.

그중에서도 흰부리딱따구리는 미국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새입니다. 멸종위기종의 대표 종이었기 때문이죠. 미국 동남부와 쿠바의 숲에 사는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인데, 언제 발견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흰부리딱따구리 개체수가 급격하게 감소한 이유는 19세기 들어 숲이 파헤쳐지고 무자비한 남획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19세기는 분류학의 시대였어요. 야생동식물을 발견해 기록하고 이름을 짓는 데 열정을 쏟았던 시대였죠. 그때만 해도 조류 전문가는 새를 수집하고, 박제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는 작업에 갇혀 있었어요. 지금처럼 ‘종 보전’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을 때죠. “잡은 것은 역사, 놓친 것은 수수께끼인 시대”였습니다.

수집가는 물론 중산층도 집안에 박제를 들여놓는 데 열을 올렸어요. 당연히 생물종이 희귀해질수록 수요는 더 늘어났죠. 지금으로 치면 미술 수집가들이 고흐의 작품을 모으듯이 희귀종의 박제를 모았다고 보면 돼요.

새들의 멸종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모자 깃털 장식이었죠. 나폴레옹과 후크 선장만 모자에 깃털을 꽂은 게 아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에게는 아름답고 이국적이고 희귀한 새의 깃털을 모자에 꽂는 게 우아함과 기품으로 받아들여졌죠. 최신의 값비싼 깃털을 구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사교계에서는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패션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 패션 잡지 <델레네이터> 1898년 1월호에는 이런 대목이 있네요.

“산책할 때는 빳빳한 깃털 장식이 달린 모자가 최신 유행이다…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스팽글이 달린 반짝이 깃털, 백로 깃털, 깃털로 만든 리본은 어떤 모자에든 어울린다.”

왓슨이 신이 나서 설명했습니다.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억 마리의 새가 인간에 의해 살해당한 거 아시나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라고 칭송받던 ‘극락조’도 그렇게 사라진 거라고요. 미국에서 으뜸은 흰부리딱따구리였어요. 멸종 직전이라 깃털을 구하기 힘들었거든요. 이런 새들은 중산층이 하고 다니는 한낱 백로 깃털과는 품격이 다른, 모자 깃털계의 명품이었던 거죠.”

“대통령 여사님이라면 디올 백같은 명품 가방 대신에 흰부리딱따구리 깃털을 수집하는 데 열심이었겠군.”

왓슨이 깜짝 놀라 홈스 반장에게 뛰어가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반장님, 가방이 아니라 ‘작은 파우치’에요!”

흰부리딱따구리의 공식 관찰 기록은 1944년이 마지막입니다. 지난 80년 동안 목격담이 끊임없이 나돌았지만, 확인해 보면 확실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어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였을까요? 1973년 미국 멸종위기법 제정 당시 흰부리딱따구리는 ‘멸종위기종’으로 포함됐어요. 하지만 여전히 ‘목격담 전파 → 기대와 흥분 → 전문가 조사 → 증거 없음’의 루틴이 반복됐고요.

그러다가 마지막 관찰 이후 60여 년 뒤인 2005년 학술 전문지 <사이언스>에도 ‘흰부리딱따구리 살아있다’는 논문이 실려요. 드디어 멸종 논란의 마침표가 찍힌 건가요? 논문의 내용은 이래요.

미국 아칸소주 캐시강국립야생보호구역의 강 지류에서 카약을 타고 가던 목격자 앞으로 빨간 깃털을 가진 큰 새가 날아오더니 20미터 떨어진 나무 위에 착지했다. 그 뒤 이뤄진 전문가의 조사에서도 같은 것으로 보이는 새가 목격됐다. 새의 비행 형태, 신체 특징, 나무 두드리는 소리를 봤을 때 흰부리딱따구리가 맞다! 심지어 4초짜리 영상도 찍었다!

암컷이 돌아오면 수컷이 나가는 식으로 흰부리딱따구리는 둥지를 지킨다. 1935년 4월, 미국 루이지애나 주 싱어 트랙트에서 아서 앨런이 찍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서

그러나, 기대와 흥분도 잠시. 뒤이어 관찰에 나선 조사팀은 비행 형태가 흰부리딱따구리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죠.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 2006년에서 2010년까지 미국의 저명한 조류연구소인 코넬연구소와 과학자들이 8개 주 2000제곱킬로미터의 숲에서 광범위한 수색 작업을 벌였습니다. 이윽고 ‘흰부리딱따구리가 살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허망한 결론이 났죠.

미국 정부는 결자해지를 하기로 해요. 2021년 미국 어류야생동물보호국(USFWS)이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흰부리딱따구리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한 거죠. ‘그간 충분히 노력했으니, 이제 그만 멸종했다는 걸 받아들이자’는 뜻이었어요.

반응은 엇갈렸어요.

먼저 찬성.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흰부리딱따구리 조사를 위해 2030만 달러의 연방 및 주 정부 자금을 지출했다. 이 돈을 다른 생태 보전 사업에 썼다면, 잘 알려지지 않은 멸종위기종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이번 결정은 합리적이다. ‘현대 북아메리카 조류 보전 정책의 역사’라는 책에서 가장 큰 손실을 다룬 장이 이제 막 끝이 났다.”

그리고 반대.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보자!”

과연, 2023년 학술 전문지 <생태와 진화>에는 ‘흰부리딱따구리의 생존을 시사하는 여러 증거들’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려요. 연구자들은 2012~2022년 조사의 검토를 통해 이 새가 간헐적이지만 반복적으로 관찰됐다며 “멸종을 선언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죠. 7만 시간의 녹음을 분석한 결과 유사한 울음소리와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확인했고, 육안 관찰 기록도 16건이 나왔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미국 정부는 후퇴했어요. 그해 10월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은 “딱따구리의 지위에 관한 의견의 상당한 불일치로 멸종 결정을 보류한다”고 밝혔죠.

‘오락가락 딱따구리 멸종사’를 다 들은 홈스 반장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확인합시다. 멸종됐는지 안 됐는지.”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한 숲으로 갔습니다. 오래된 나무에 둥지를 만드는 딱따구리가 깃들 만한 오래된 숲이었죠. 떡갈나무, 물참나무, 버드나무 등 활엽수가 하늘에 우산을 펼쳤고, 구불구불하게 흐르던 강은 좌우에 늪을 만들며 곧아졌습니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캠프를 차리고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많은 나무에는 여러 종의 딱따구리가 구멍을 내어 만든 집이 있었어요.

딱따구리는 이렇게 오래된 나무에 널찍한 둥지를 만들어요. 딱따구리가 먼 곳을 간 사이 다른 동물이 둥지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도 딱따구리는 화내지 않고, 이내 다른 집을 짓습니다. 자신을 숲의 주택공급자로 여기거든요. 우리는 딱따구리가 낸 구멍(둥지)을 하나하나 방문했습니다.

똑똑똑.
“흰부리딱따구리 아저씨 계십니까?”
“그런 새 안 삽니다. 난 도가머리딱따구리(Pileated Woodpecker)요.”

똑똑똑.
“상아부리딱따구리 아저씨 계십니까?”
“할머니 적에도 없었던 전설의 새입니다. 난 빨간머리딱따구리(Red-headed Woodpecker)요.”

열흘 넘게 온갖 나무의 둥지를 두드려봤지만, 흰부리딱따구리는 없었어요. 홈스 반장이 체념한 듯 말했습니다.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은 특정 종의 지속적인 존재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객관적인 증거로, 선명한 사진과 최근에 지속해서 발견된 깃털이나 표본을 요구하고 있어. 흰부리딱따구리를 만나기는커녕 깃털이나 사진을 발견하기도 힘들겠는걸. 마지막으로 이 나무 둥지만 확인해 보세요.”

똑똑똑.

이번 둥지에선 대답이 없었어요. 조심스레 둥지 안을 살펴보니, 필기도구와 공책, 작은 카메라 그리고 USB 메모리가 있었죠.

“누군가 여기에 두고 간 거 같은데요. 이 메모리에는 뭐가 저장돼 있을까요?”

홈스와 왓슨은 메모리를 노트북에 연결했습니다. 놀랍게도 메모리에는 사진 수백 장 들어있었죠. 최근 이 숲에서 발견된, ‘흰부리딱따구리’라고 주장됐던 희끄무레한 사진 여러 장도 들어있었어요. 왓슨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습니다.

“반장님, 그런데 이 사진들은 뭐죠?”

홈스와 왓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어두운 호수에 고개를 내민 공룡 같은 형상의 동물 같았죠.

“이건 네스호에 사는 괴물, 네시 아닌가?”

1934년 영국 일간지 < 데일리 메일 >에 실린 네시의 사진. 위키피디아 코먼스 제공

*5월13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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