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누구를 위하여 '전삼노 파업의 종'은 울리나

이규진 2024. 4. 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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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규진 기자]

무노조 경영의 대명사였던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서 올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파업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0년 무노조 경영 포기를 선언한 이후 삼성그룹에는 복수노조가 난립 중이다. 이중 전국삼성전자노조(이하 전삼노)는 전체 직원수의 20%를 보유한 삼성전자의 최대 노동조합이다. 이 전삼노가 올들어 쟁의행위 절차를 밟아 언제든지 파업을 할 수 있는 상태다.

지난 17일 전삼노는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 부품연구동(DSR) 앞에서 문화행사 형식으로 단체행동에 나섰다. 자체 추산 200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내달 24일에는 삼성 서초사옥에서 두 번째 단체 행동을 한다.

전삼노의 핵심 주장은 임금인상률 6.5%다. 유급휴가 1일 추가는 ‘사족’으로 보인다. 사측이 내건 5.1%보다 1.4% 포인트 높은 수치다. 각자 연봉의 1.4%를 더 받자고 억대 연봉들이 뭉친 것이다.

평균 연봉을 1억원으로 치면 1년에 140만원 더 달라고 ‘파업’ 무력 시위를 하는 셈이다. 기본급이 140만원 오르면 총액임금은 이보다 더 오르긴 한다. 하지만, 기본급 140만원 인상을 놓고 공장을 세우겠다니 삼성전자 직원들이 그렇게 가난들 한가 싶다.

전삼노는 파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서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매우 큰 데 파업이 일어난다면 타격은 사측뿐 아니라 노측과 국민들까지 입을 수 있다"면서도 "사측에 전향적 변화가 없다면 결국 파업으로 가는 길로 내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리하면, ‘삼성전자가 파업을 하면 국민도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 회사가 6.5% 인상안을 안들어주면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할 거고, 그 책임은 회사에 있다’는 얘기다. 파업을 하는 당사자는 전삼노인데, 파업의 피해자인 사측이 거꾸로 파업의 행위자라는 해괴한 논리다.

여기서 한번 짚어봐야 한다. 전삼노의 주장이 최저생계를 보장받기 위해 생존권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배수의 진’을 친, 국민들의 연민과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생계형 호소’인지를.

삼성전자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면 연봉이 1억원을 넘는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성과급의 편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많이 받는 직원들은 정해진 연봉 이외에 보너스로 한번에 수천만원을 받는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는 인권과 근무환경이 개선돼 정시 출퇴근을 하는 ‘삼무원’, 즉 ‘삼성 공무원’이란 별칭마저 생겼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불황으로 11조526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물론 100조원이 넘는 사내 유보금을 갖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반도체라인 하나 구축하는데 20조~30조원이 든다.

올들어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있어 다행이다. 메모리반도체인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재고가 줄고, 고정거래가격이 반등 추세를 보여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해 큰 손실을 봤는데도 ‘올해 형편이 좀 나아질 거 같으니, 가불해서 임금인상을 해달라’고 하는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태도다.

기업이 망하면 월급도 없다. 미국과 일본 등이 막대한 보조금을 주며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반도체 전쟁’이 한창이다. 억대 연봉자들이 연간 140만원을 더 받겠다고 글로벌 초일류기업을 훼방놓는 건 아무래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사측이 제시한 평균 임금인상률 5.1%는 올해 예상 소비자 물가 인상률(2.6%)의 2배 수준이다. 힘겹게 박봉으로 가계를 꾸려가는 중견중소기업 근로자들과 빚에 내몰리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보기엔 ‘해도 너무 하는’ 집단행동이다.

전삼노 집행부와 노조원들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삼성전자를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각고의 노력을 해온 그대들은 진정 삼성전자의 파업을 원하는가? 아울러 과연 이번 쟁의가 노조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복수노조 경쟁 속에서 ‘전삼노’라는 조직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포석은 아닌지…

전삼노를 지켜 보면서 독일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의 ‘과두제의 철칙’ 이론이 불현듯 기자의 뇌리를 스친다. '권력을 잡은 소수, 즉 과두들은 그들의 권력을 보존하고, 또한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이규진 기자(sky91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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