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비극, 언제 끝날 수 있을까요

정의길 기자 2024. 4. 2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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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 #미, 우크라 대규모 무기지원
27일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을 피해 지하철로 대피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민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미국 의회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법 통과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발전소 등 사회기반시설에 폭격을 강화해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러시아군이 2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중부 및 서부의 발전소를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화력발전 능력의 80%, 수력발전 능력의 35%를 상실했다고 우크라이나 관리들 말을 인용해 로이터가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공격 강화를 거론하며, 서방에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을 포함한 방공망의 신속 지원을 거듭 호소했다. 우크라이나 지원법 의회 통과 사흘 뒤인 26일 미국 국방부는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과 포탄 등 약 60억달러의 새로운 무기를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 지원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내기로 한 최대”라고 말했다. (한겨레 4월28일)

Q. 가자전쟁이 워낙 참혹하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쟁을 잊고 있었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계속 밀리고 있다던데 어쨌든 우크라이나 지원법이 통과됐으니 가뭄에 단비 같겠다.

A. 지난해 연말 이후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서방의 군사지원을 거의 못 받았어. 유럽연합이 지난 2월 500억유로 규모의 지원안을 통과시키긴 했는데 이는 향후 4년간 지원하는 거고 대부분 경제 분야에 집중돼 있어. 이번 미국의 지원안은 총 608억달러 중 518억달러가 군사 지원이야.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지.

‘우크라이나 지원법이 통과 안 되면 우크라이나가 2024년말께 패배할 수 있다’(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장)는 경고가 나올 정도로 이번 지원은 아주 중요했어. 지원안이 통과 직후인 26일 로이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내기로 한 최대 안보 지원 패키지”라면서 우크라니아에 패트리어트 방공망 미사일 및 포탄 등 60억달러 무기를 구매해 즉각 보내겠다고 밝혔어.

미국의 무기 지원은 군사적 효과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기 진작 등 상징적 효과도 크지.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버림받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하니까. 하지만 미국의 지원이 전세를 뒤집기엔 쉽지 않아 보여. 러시아의 여름 공세를 저지하는 정도 효과 아닐까.

Q. 최대 규모 안보 패키지인데도 역부족이라고?

A. 우크라이나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포탄과 방공망 미사일이야. 이런 무기들이 전투 현장에 도착해서 전세에 변화를 주려면 빨라도 몇주 이상 걸려. 현재 포탄은 서방에서 생산과 재고가 바닥이 났어.

백악관은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군사적 목적을 이루려면 월 9만발 이상 포탄이 필요하다고 계산했어(워싱턴포스트). 이 정도는 미국이 증산해도 10분의 1 정도만 공급할 수 있는 막대한 분량이야. 지난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했잖아. 미국이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주고 한국은 미국에 포탄을 주는 ‘쓰리 쿠션’ 방식으로 50만발을 주겠다고 합의했지. 그런데 이때 한국이 준 포탄 분량은 지난해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준 분량보다 더 많았어. 그러니 러시아로선 한국이 얼마나 밉겠어? 한-러 관계가 수교 이후 역대 최악이 된 건 이 포탄 지원이 결정적이었어.

러시아는 최근 후방에 공습과 미사일 공격 강도를 높였어. 이를 막으려면 패트리어트 미사일 같은 방공망이 필요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전력이 취약한 그리스나 스페인에까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어. 그리스는 재고가 없다고 거부했고, 스페인은 일부 미사일만 제공할 수 있다고 해.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4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설리번 보좌관은 사거리 300km의 신형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Q. 우크라이나는 전쟁 첫해 여름에 동북부 점령지를 탈환하기도 하고 잘 싸웠잖아. 미국이나 유럽이 지원을 충분히 했다면 러시아를 밀어붙이는 데 진작 성공하지 않았을까?

A.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전쟁 수행능력이 월등해.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사상 최대의 대국가 경제제재를 주도했어. 러시아 해외 자산 동결, 러시아 수출입 제한, 석유 등 에너지 수출 제한 및 금지, 국제금융망에서 러시아 퇴출, 러시아 내 서방 기업 철수 등등. 하지만 이 제재엔 중국이나 인도는 물론 브라질·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미 국가들도 동참하지 않았어.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지. 최대 석유수출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석유가 시장에 나오지 않자 석유 가격이 확 뛰었어. 러시아는 석유·가스를 중국·인도에 시장가보다 싼 값에 팔았는데 그래도 제재 이전 수준의 수입을 올렸어. 미국과 맞서려는 중국과 러시아는 이참에 달러결제 체제를 대체하는 자국 통화 결제망을 가동하려고 하고.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중공업 생산 능력이 월등한 나라야. 소련 붕괴 이후 유휴화됐던 중공업 공장들이 풀가동되면서 무기 생산이 늘었고 경제는 오히려 순항 중이야. 중국 등과의 교역으로 돈과 필요한 물자도 얻고 있어서 별로 아쉬울 게 없어.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경제가 지난해 3%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2.6%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지.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보다 높아.

2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군인 가족과 친척들이 징집 해제의 합리적인 기준을 명시한 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Q. 듣고 보니 우크라이나엔 정말 불리한 상황이네.

A. 오죽하면 미국 중앙정보국장이 올해 안으로 우크라이나 패배를 경고했겠어.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6월부터 반격공세를 펼쳤는데 성과가 시원치 않아. 심각한 건 이 반격에 병력·무기 등 자원을 소진했다는 점이야. 그러다 가자전쟁이 터지고 국제사회 관심이 줄어들고 서방의 지원이 끊기니까 더욱 힘들어진 거지.

러시아는 연말부터 재반격을 하고 있어. 올해 러시아는 360㎢나 점령지를 확장했어. 러시아는 현재 동북부, 동부, 남부 전선 등지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는데 특히 동부 도네츠크주의 전략 요충지인 아우디이우카를 올해 초 탈환하는 데 성공했어. 지금은 그 북쪽 차시우야르로 향하고 있는데 여기를 점령하면 도네츠크주 주요 도시들을 넘볼 수 있게 돼.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가장 필수적인 포탄 화력이 10배 앞서. 러시아군이 포탄 10개 쏠 때 우크라이나는 1개만 쏜다는 뜻이지. 러시아 인구(1억4천만)는 우크라이나(3800만)보다 훨씬 많은데 투입 병력도 전쟁 초기보다 15% 늘렸어. 반면 우크라이나는 징집 연령을 기존 27살에서 25살 이상으로 확 낮췄는데도 병력이 거의 소진됐어.

Q. 그럼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디로 가는 거야?

A. 냉정하게 평가하면, 늦어도 지난해 연말 빠르면 2022년 연말부터 러시아는 점령지 굳히기 국면에 들어갔어. 통상적으로 공세를 펼치는 쪽이 방어하는 쪽보다 전력이 3배가량 더 월등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전력이 우위에 있지 않은데도 계속 공세를 펼치다가 병력과 자원만 소모했어.

서방의 추가 지원은 러시아의 공세를 저지하는 수준에 그칠 거야. 그 이상 획기적 조처가 없다면 점령지를 탈환하는 건 힘들어 보여. 600억달러 지원도 1년 지나면 바닥이 날 거야. 미국은 올해 11월 대선을 치르잖아. 누가 당선되더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골칫거리가 될 거야. 트럼프는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인 데다, 지원을 하더라도 원조가 아니라 차관 형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미국이 지원에 소극적이면 유럽국가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어지지.

결국 동결된 전쟁(frozen war)으로 갈 거야. 한국도 3년간 전쟁을 벌이다가 평화협정 같은 결론을 맺지 못한 채 동결된 전쟁으로 갔잖아. 그래도 한국은 정전협정이라도 맺었지, 우크라이나나 미국 모두 러시아가 점령지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정치적 타협이나 정전협정을 못 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상황이 더 복잡해.

27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쪽의 보로디얀카를 폭격해 건물이 반파된 모습. 보로디얀카는 2022년 개전 초반에 러시아가 점령했던 지역이다. 최근 러시아는 공격 강도를 높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Q. 그렇다고 계속 전쟁할 순 없잖아.

A. 사실 전쟁 초기부터 미국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이기기 힘드니 정치적 타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어. 전쟁 첫해인 2022년 연말 우크라이나 전쟁의 서방 감독관 격인 마크 밀리 당시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협상의 기회가 있을 때, 평화를 이룰 수 있을 때, 그것을 잡아야 한다”며 “말 그대로 군사적 수단으로는 승리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호 인식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지. 당시는 우크라이나가 점령지를 일부 탈환하고, 러시아가 방어로 돌아설 때였어.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점령지 반환이나 배상 없이는 정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서방 지도자들도 여기에 장단을 맞춰줬어.

지금 미국에선 마크 밀리 같은 협상파들은 물러나고 입지가 더 쪼그라들었어.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승리를 예상했던 리처드 배런스 전 영국 합동군 사령관은 최근 비비시(BBC)에 “우크라이나가 이길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사람들은 왜 방어할 수 없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지, 왜 더 죽어야 하는지 묻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말했어.

전쟁은 종식돼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 ‘처절한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면 그 역시 비극일 거야. 미국과 서방은 왜 러시아가 저렇게 결사적으로 나오는지 이해하고, 상대방의 안보 불안을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할 거야.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의 자결과 독립을 지켜주는 현실적 타협안을 찾아야 하고. 그런데 이런 말도 지금은 참 공허하게 들리는구나.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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