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정거장 박테리아 돌연변이…항생제에도 죽지 않았다

곽노필의 미래창
가혹한 우주환경 적응해 생존한 결과
지구에선 볼 수 없는 돌연변이 일으켜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병원성 박테리아 ‘엔테로박터 부간덴시스’. 미 항공우주국 제공

고도 400km의 지구 저궤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6개월을 주기로 우주비행사들이 교체된다. 1998년 이후 지난 25년 동안 우주정거장을 다녀간 사람은 우주비행사와 민간 방문객을 합쳐 모두 23개국 28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의도하지 않게 배설물이나 호흡, 피부를 통해 수많은 미생물을 우주정거장에 남겨놓고 지구로 돌아온다.

가혹한 우주환경은 궤도의 폐쇄된 환경에 놓인 미생물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인도 마드라스공대와 미 항공우주국(나사)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진이 우주정거장에 있는 박테리아를 관찰한 결과 , 지구에 있는 동종의 박테리아와 전혀 다른 형태의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지구에 없는 구조로 변형된 것으로 추정했다.

좁은 공간에서 6~7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체류하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군이 서식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악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돌연변이

이번 연구는 2015~2016년 3번에 걸쳐 국제우주정거장 내 8곳에서 채취한 미생물 표본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사람의 위장관에서 주로 발견되는 병원성 박테리아 ‘엔테로박터 부간덴시스’(Enterobacter bugandensis)를 대상으로 삼아 분석했다. 이 박테리아는 생후 90일 미만 아기한테서 발견되는 신생아 패혈증의 원인균이기도 하다.

연구진이 미생물 표본에서 이 박테리아 13종을 분리해 분석한 결과, 항생제에 강력한 저항성을 보이는 내성균으로 진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미세중력과 방사선, 높은 수치의 이산화탄소 농도, 강한 햇빛 등 악조건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돌연변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또 이 박테리아 종은 다른 여러 미생물과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경우에 따라 다른 미생물의 생존을 도왔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런 진화적 적응에 힘입어 이 박테리아가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세종이 됐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우주정거장 내에서 미생물 군집을 채취한 8곳. 번호 순서대로 조망창 큐폴라 옆, 화장실 구역, 운동실, 식탁, 보관용 선반, 다목적 보관 모듈(PMM), 휴대용 정수기 인근, 숙소. 출처: https://microbiomejournal.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s40168-019-0666-x

이 박테리아가 우주정거장에 체류하고 있는 우주비행사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 돌연변이 종이 지구의 인간에게 위험 요소가 될지도 아직은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그러나 우주정거장에서는 이런 돌연변이 종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 조처를 취해야 하며, 이번 연구에서 드러났듯 지구 환경에서 출현 가능성이 적은 박테리아가 우주에서 출현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논문 정보

DOI: 10.1186/s40168-024-01777-1
Genomic, functional, and metabolic enhancements in multidrug-resistant Enterobacter bugandensis facilitating its persistence and succession in the International Space Station.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