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근의 영화 속 도시이야기]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 센다이(Sendai)
동일본 대지진 비극의 중심지이자 도호쿠지방의 간판 도시
[더팩트ㅣ대구=김승근 기자] 나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그 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것이 바로 자연재해다. 그것도 대부분 나쁜 방향으로.
올해 4월 초 규모 7.2의 지진이 대만 동부를 강타했다. 이 지진으로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99년 2400명의 사망자를 냈던 지진 이후 대만은 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사망자가 많지 않았다고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피해자가 생겨난 이상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이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재난 뒤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어루만지기도 전에 또 다른 재해가 이어지면서 ‘나의 아픔’은 뒤로 밀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왕왕 본다.
26회 부산영화제(2021년)에서 공개됐던 영화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은 일본 센다이를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진 뒤에 남은 자들의 아픈 이야기를 담으면서 살아남은 자 역시 또 다른 피해자임을 느끼게 한다.
영화에서 공무원들은 선진국들의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율이 50% 정도에 달하지만 일본은 이런저런 이유로 1% 정도에 그친다고 말한다. 그들은 국가의 정당한 도움마저 신청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 굳이 공무원이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배경에는 ‘민폐(메이와쿠·迷惑)’를 끼치기 극도로 싫어하는 국민성이 한몫하고 있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도움조차 피할 정도이니 재해로 인한 다양한 형태의 피해가 그 형태 만큼이나 다양한 비극을 잉태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셈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재난 발생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잊히는 직접 피해자들과 그들을 사회보장제도의 틀에서 배제하려는 담당 공무원들과의 갈등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 재정을 한푼이라도 더 아끼려는 ‘이기적’ 공무원들 역시 지진 피해를 직접 입은 당사자나 그 가족처럼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동일본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미야기현 오시카반도 동남쪽 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지진으로 2021년 3월 기준 사망자 1만 9759명, 실종자 2533명, 지진 이후 건강 악화나 자살 등으로 숨진 재난 관련 사망자도 3767명에 이르는 엄청난 비극이었다. 주택 파괴만 40만 채가 넘었고 피난민만 47만 명에 달하면서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가장 큰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었다.
영화 배경인 센다이 역시 지진 피해지 중 한 곳이다. 영화에서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장소인 와카바야시 구청이 있는 와카바야시 역시 쓰나미로 200여 명이 희생된 곳이다. 이곳에 있는 아라하마초등학교는 쓰나미 피해를 바로 입은 곳으로 2층 절반까지 바닷물이 잠겼다. 실제로 학교 건물 외벽에 선으로 표시를 해놓기도 했다. 지금 이곳은 기억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지진 후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전시돼 있는 체육관 시계가 15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어서 그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기도 하다.
미야기현 현도이기도 한 센다이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인천-센다이행 비행기에도 일본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진 피해지역이고 방사성 오염수와 관련된 후쿠시마 인근이라는 점이 여행지로서 선택하기 부담스러워서겠지만 원래 일본 본토에서 중북부지역인 미야기현, 이와테현, 야마가타현 등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일본인들 역시 덜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나마 일본 3대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 센다이에서 넘어지면 코닿을 곳에 있는 마쓰시마와 역시 센다이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야마가타현 자오산맥을 동서로 잇는 드라이브코스인 자오에코라인 그리고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알려진 긴잔온천 정도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하겠다.
말이 나온 김에 해보자. 일본 애니메이션은 상당수가 실제 도시나 건축물 등을 작화 바탕으로 만들어 영화 흥행이 곧 배경 성지화로 연결 되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슬램덩크’ 의 주 무대인 가마쿠라다. 한 해 평균 2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물론 반대급부로 지역주민의 불편함은 풀어야 할 과제로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한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끌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특이하게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난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 ‘날씨의 아이’는 나가노현 스와호의 아름다움을 잘 담아내 오타쿠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센다이도 8년 반 동안 403회나 연재된 배구만화 하이큐의 배경이다. 카메이아레나 센다이체육관, 도호쿠고교이즈미캠퍼스, 코토다이코엔역 등이 나왔다.
센다이는 동일본지진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도호쿠지방 중심도시임은 변함이 없다. 우설(소혀) 요리로도 유명하다. 센다이의 기반을 닦은 건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두려워 했다는 다테 마사무네다. 160㎝가 채 안되는 키에 외눈이라는 신체 장애를 극복한 그는 센다이성을 축조한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다테 마사무네를 빼고는 센다이를 얘기할 수 없다. 그의 명성은 장수로서 뿐 아니라 센다이 식문화의 틀을 닦은 것도 한몫한다. "진수성찬은 계절 음식을 마음껏 내놓고 주인이 직접 요리해 대접하는 것"이라는 말도 그의 말이다.
이와 함께 마사무네는 화려한 전투복을 꾸몄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초승달 모양이 붙은 다스베이더마스크 역시 그의 투구에서 차용된 것이다.
실제로 미치노쿠 다테 마사무네 역사관에 가면 다스베이더 투구(?)를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다스베이더 투구모양의 파르페도 판매하고 있다. 스타워즈 첫 편이 나온 지 50년이 다 돼간다는 점에서 당시 제작진이 마사무네의 투구를 차용한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문화가 섞이고 다시 만들어지는 상황에선 국경도 의미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다테 마사무네의 말처럼 주인이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들어 주는 센다이 식도락을 즐기려면 쇼와시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쿠분초 이자카야에 들러보자. 주인의 추천 술에 안주는 구운 어묵(가마보코)을 빠트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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