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걱정 대신 여기서 행복하게 살기 [서울 말고]

한겨레 2024. 4. 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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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지난 15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인구감소지역 부활 3종 프로젝트’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마을 입구 집이 적막하다. 조선낫 모양 허리 굽은 갈촌아지매가 요사이 통 뵈지 않는다. 텃밭 이랑에는 잡풀이 무성하다. 몇 해 전 갈촌양반 세상 뜬 뒤 아지매 홀로 집을 지키더니 딸네 갔는지 요양원에 갔는지 댓돌 위에 겨울 털신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산청군 한 마을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여느 시골 마을이지만 생성된 지 200~300년쯤 됐다. 1960년대 중반에는 100여 가구에 500여 명이 살았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우르르 줄을 이어 고개 너머 2㎞ 밖에 있는 학교로 향했다. 추석이면 타작마당에 모여 동네 노래자랑대회를 펼쳤다. 지금은 30여 가구에 50명쯤 살고 있을까. 자식들은 다들 도시로 나가고 부모들은 하나둘 세상을 떴다. 몇 년 사이 더러는 요양원으로 자식네로 갔다. 안담에도 정담에도 빈집이 늘었다. 더러 주말이면 사람 그림자가 얼비친다. 이것도 잠시, 점차 발걸음 뜸해질 거다.

그렇다고 비어가는 마을만 있는 건 아니다. 주변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형태의 마을이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도시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무리 깊은 골짜기라도 ‘귀신같이’ 도로를 내고 전기·수도를 들이고 땅을 다듬어 택지를 조성했다. 금세 마을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나고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은 “물이 귀하고 북향에 바람골이라 사람이 안 살던 덴데 저따다 집을 짓네. 거참 우짤건지”라며 혀를 찼다. 다행히 20년이 훌쩍 지나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새 마을’이 되었다. 자연생태니, 교육공동체니, 귀농귀촌이니 붙어 다니던 수식어가 언젠가부터 없어지고 이제는 산이나 골짝을 딴 마을 이름으로 불린다.

산청군은 소멸 고위험지역에 포함된다. 올해 초 발표에 따르면 산청군은 소멸위험지수 0.124로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10위권에 꼽힌다. 지난해 10월 기준 산청군 인구는 3만3800명이다. 노인(65세 이상)이 1만3780명, 청년 여성(20~39세)이 1887명이다. 노령인구가 40%를 넘었다. 2021년 0.5 미만으로 소멸위험지역이었는데 2년 사이 달라졌다. 이 추세라면 3~4년 안에 노령인구가 인구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상황은 타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소멸론이 등장 후 중앙정부·학계·언론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폭력적이었는가를 생각하면, 위에 언급한 지표나 통계를 굳이 들먹거리고 싶지 않다. 되짚어보면 정부·학계는 해마다 소멸지역 순위를 매기고 초읽기를 했다. 언론은 ‘종말론’ 운운하며 보도했다. 여기에는 대안도 없고 모색도 없다. 서울수도권 말고 ‘나머지’ 지역은 살아남으려면 각축전을 벌이라고 내모는 꼴이다. 지방정부는 앞다퉈 소멸대응기금 투자계획 수립과 전략을 세워 내놓는다.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지역 특수성에 대한 고민이나 주민 의견 반영은 찾아볼 수 없다. 조금만 검색하면 전국 어디서나 진행되는 ‘사업을 위한 정책’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소멸에 대해 즉각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것이 본능적이든 학습화된 것이든. 2023년 2월26일 여기 칼럼난에서 나는 ‘소멸지수 말고 희망지수’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 있다. ‘…지방소멸을 사회 공론화하는 과정은 무책임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질 불안감은 어떨까, 오히려 ‘탈지역’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 소멸위험지수보다는 각 지역의 ‘발전지수’ ‘희망지수’를 공론화하는 게 서울수도권 집중화를 늦추는 길이 될 수도.’ 위기와 불안을 조장하는 앵무새 보도는 계속이고 10년 넘도록 무릎 칠 만한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

소멸 고위험지역 주민 1인으로 생각해본다. 다만 소멸이 다가온 현실이라면, 타 지역 인구 끌어오기에 전전긍긍하기보다 지방정부는 정주민이 여기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더 모색하는 게, 미래적인 대안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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