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따위는 버리고, 문명화된 내전을 [EDITOR's LETTER]

2024. 4.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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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믿지 못할 성공은 때로는 불안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벨 에포크를 떠올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유럽사에서 드물게 전쟁이 없던 시절,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고 문화가 꽃피웠다. 인상파 화가와 낭만주의 음악가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1차 대전 시작으로 아름다운 시절은 막을 내렸다. 지난 몇 년간 한반도에도 전쟁 위협이 없었다. 이 시기 K컬처, K배터리, K바이오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K컬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5월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사라예보의 총성과 같은 변수는 없기를 바랄 뿐.”

2022년 3월 썼던 칼럼입니다. 당시 외신에는 한국에 대한 기사가 넘쳐났습니다. 코로나19를 가장 잘 극복한 나라, BTS와 ‘오징어 게임’으로 K컬처 붐을 일으킨 나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변신한 나라 등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주가는 3000을 넘어섰고 서울은 세계인들이 가보고 싶은 도시가 됐습니다.

2년이 지났습니다. 2024년 봄 외신들은 한국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경제의 기적은 끝났나’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달라지지 않은 경제 및 산업구조. 성공적 모델이라 개혁이 어려운 딜레마, 높은 자살률, 가계부채와 정부부채, 고령화 등을 지적했습니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세계적 언론이 대놓고 지적하니 아팠습니다.

블룸버그도 나섰습니다. “한국 ‘그림자 금융’의 약한 고리…PF 최악 상황 아직 안 왔다”였습니다. 제2금융권이 부동산 대출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한국 정부는 부실 대출과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정치적 리스크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정치 리더십은 좌파가 통제하는 입법부와 인기 없는 보수적인 대통령 및 행정부가 갈라져 있다. 의회 선거에서 좌파 정당의 승리는 2027년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3년 이상의 정치적 교착 상태가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 

이 대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주도 성장으로 기적을 이뤄냈지만 기적의 여정이 끝나는 것을 막기에 한국 정치는 역부족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그럴 것도 같습니다. 누군가 협치를 말하지만 공허하게 들립니다. 지지율이 추락한 대통령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야당은 정책을 입법으로 밀어붙일 기세입니다. 이 상황에서 협치란 단어는 사치스러울 뿐 아니라 음모의 냄새까지 풍깁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문명화된 내전’이라고 합니다. ‘무력이 허용되지 않고, 패배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승자가 패자를 파괴하려고 하지 않는 권력 경쟁’이라는 마틴 울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협치 따위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여야는 지금까지처럼 치열한 내전을 하면 될 듯합니다. 달라져야 할 점은 패자를 파괴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진 쪽은 일시 후퇴하고, 전투에서 이긴 쪽은 과실을 누리는 것이 전쟁이며 정치이기도 합니다. 탄핵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은 한발 물러서고, 야당은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과실을 챙기며 포용적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일 듯합니다.

대통령은 특검 등 야당 요구 중 일부를 수용하고, 야당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재건축·재개발 패스트트랙 등 민생과 관련된 법안은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면 충분히 타협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종교나 인종 분쟁은 중재나 타협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살육을 동반한 전쟁을 합니다. 

하지만 현재 여야가 벌이는 논쟁, 분쟁은 이런 유가 아닙니다. 외신들이 멀쩡했던 나라 걱정을 해주는 꼴을 국민들은 계속 보게 하고, 역사에는 한국이 이룬 기적의 종말을 가속화한 인물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정치인은 없을 것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일시적으로 권력을 담당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지속되어야 할 한국 사회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새겨볼 시간인 듯합니다. “사회는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파트너십일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과 이미 죽은 사람, 앞으로 태어날 사람 사이의 파트너십이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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