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돋보기]펀드 1000조원 시대의 명암

송길호 2024. 4. 29.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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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올해가 미국 뮤추얼펀드 탄생 100주년이라고 한다. 미국 자본시장에서 뮤추얼펀드는 주식 대중화와 장기투자의 대명사로 미국식 경제와 금융, 성장과 분배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는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뮤추얼펀드는 미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0%를 소유하는 기업 지배권시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7명이 보유하고 있어 주식시장 과실을 대다수 국민에게 분배하는 핵심 금융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뮤추얼펀드 33조 달러는 미국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큰 규모이며,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우리나라도 증권투자신탁까지 거슬러 가면 펀드 역사는 50년이나 된다. 얼마 전부터 GDP의 절반 수준인 펀드 1000조원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제 고작 1000조야’라는 만시지탄과 앞으로도 험난해 보이는 펀드시장에 불안한 시선을 둔다. 1000조원중 공모펀드는 400조원에 불과하다. GDP의 18%로 공모펀드 규모가 GDP보다 큰 호주나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 일본 등에 비해서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빠르게 성장했으나 그 후 전략과 정책, 혁신의 부재로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성장을 멈춘 것이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공모펀드는 후퇴했다.

미국에서 뮤추얼펀드의 역할을 보면 우리나라의 공모펀드 위축은 단순한 생태계만의 일로 치부할 건 아니다. 주식시장 과실을 중산층 가계로 나누는 분배시스템의 위축이자 투자 대중화라는 금융민주주의의 후퇴로 볼 수 있다. 주식시장이 좋으면 국민이 함께 부유해지는 미국식 자본시장이 되려면 펀드시장 발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다수 국민이 소외되는 자본시장의 발전이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경제적 갈등의 원천이 될 수 있다. 펀드 대중화를 통해 기업 성장과 자본시장 발전, 국민 재산증식이 란 삼위일체를 완성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변화의 기준은 투자자의 편에 선 펀드생태계 구축이다. 펀드시장의 잃어버린 10년은 투자자의 신뢰 상실 때문이었다. 더 큰 규모의 금융사고가 진행형이라는 점은 신뢰위기 회복을 위한 특단의 변화를 촉구한다. 존 보글이 잘 나가던 웰링턴펀드 최고경영자(CEO)직을 던지고 인덱스펀드 실험의 성공을 확신한 이유는 당시 액티브펀드가 투자자 편에 서 있지 않다는 체험 때문이었다. 신뢰위기를 반복하는 플랫폼을 디지털로 근본 재편하거나, 존 보글 실험처럼 액티브에서 패시브로 시장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프레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번째는 펀드의 장기 수요기반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다. 노후자산 운용 목적의 사적연금과 목돈 마련 목적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활용 가치 극대화를 위해 제로베이스로 재검토가 필요하다. 불입 한도를 최소한 두 배 이상 확대해 글로벌 수준에 맞추자. 보유와 매매 관련 세제가 면세되는 두 계정의 불입한도 확대는 금투세 폐지 논란으로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진 펀드 세제 형평 논란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운용 규제도 펀드는 물론 우량 개별주식 편입을 부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연금계정과 ISA계정을 연금성과 비연금성을 대표하는 생애자산관리 앵커계정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운용과 관리 편의성이 높아짐은 물론 장기적으로 펀드의 가장 중요한 수요기반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모펀드의 혁신 방향은 상장지수펀드(ETF)가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 ETF가 단기투자와 변동성을 부추긴다는 비판은 시장 감독을 통해 관리해야 할 과제이며, 존 보글도 긍정했듯이 액티브보다 인덱스, 인덱스보다 ETF가 장기투자와 불완전판매 없이 투자자 편에 선 펀드생태계 구축에 적합하다. 최근 블랙록은 처음으로 액티브 공모펀드를 ETF로 전환하는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전환 목적은 비용 절감은 물론 다양한 공모펀드 전략을 적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ETF시장을 바라보는 거대 하우스들의 시선이 단순한 비용의 복리효과를 넘어 투자자의 투자전략 선택지를 확대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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