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으로 매끄럽게 나누는 기사, 의심스럽지 않으신가요?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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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갔는데 나중에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2015년 말에 했던 한 인터뷰가 그랬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는 사건 내용보다 그가 앞서 말한 대목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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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갔는데 나중에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2015년 말에 했던 한 인터뷰가 그랬습니다.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장관급 고위직을 지낸 후 귀촌한 한 인사를 취재할 일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그가 관여한 단체에 분란이 일어났고,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누군가 갈등을 하고 있다면 누가 100% 옳고, 누가 100% 잘못하는 싸움은 없다. 잘못을 굳이 따지자면 60대 40이거나, 70대 30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사건 조사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결과가 100대 0이었다. 한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하나도 없었다.’ 그 인터뷰는 그 사건에 대해 좀 더 묻는 내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는 사건 내용보다 그가 앞서 말한 대목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갈등의 잘못을 따지자면 60대 40이거나 70대 30인 경우가 많다는 내용 말입니다. 저는 그걸 ‘60대 40의 세계관’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갈등 상황은 기자의 취재 대상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쟁점이 무엇인지를 취재합니다. 당연히 갈등의 양 당사자를 취재합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갈등을 지켜본 다른 이들의 의견도 듣습니다. 그런데 취재 경험을 돌이켜보면 갈등 당사자들은 자기가 불리한 대목은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40이고, 상대의 잘못이 60이라고 한다면 60만을 이야기합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했다가, 다른 이해당사자의 반론을 듣고서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크로스체크는 기본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기자는 그 60대 40의 세계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흑과 백으로 너무 매끄럽게 나누는 기사는 오히려 의심스럽습니다. 물론 기사를 읽고 ‘오십보백보네’ 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치만 오십 보와 백 보는 큰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일도양단하기 어려운 사안이 점점 많아진다고 느낍니다. 사실의 기반 위에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자. 이런 마음과 태도로 2년 동안 〈시사IN〉을 만들었습니다. 매체가 우물쭈물한다고 여기는 독자분들도 계셨을 듯합니다.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호로 2년 편집국장 임기를 마칩니다. 바통을 변진경 새 편집국장에게 넘기고, 저는 잠시 휴가를 다녀온 이후 취재기자로 복귀합니다. 지면 혁신을 기대하며, 독자 여러분도 〈시사IN〉 곁에서 계속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미리 감사 인사 드립니다.
차형석 편집국장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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