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만 가져와 달라" 정부의 의대증원 재논의 조건에 의사들 갈렸다

정심교 기자 2024. 4.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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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의대 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에 반발하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제출한 사직서의 효력이 발생한 25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대화하고 있다. 2024.4.2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의대증원책을 놓고 정부와 의사집단이 2개월 넘게 양보 없이 대치해온 가운데, 정부가 "합리적·과학적 근거에 따른 통일된 안을 의료계가 가져온다면 2026학년도 대학 입시에 적용할 의대증원 문제를 재논의할 수 있다"고 의사들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대다수 의사의 주류 의견은 '2026학년도가 아닌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을 전면 백지화할 것'으로 모였다. 이런 가운데 일부 의대 교수 사이에선 적절한 의대 증원 규모를 과학적으로 연구해보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두 갈래로 나뉜 모습이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앞서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의료개혁특위' 결과 브리핑에서 "의료계에서 통일된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그래서 한 그룹의 얘기를 전적으로 의료계 의견이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의료계가)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논의할 수가 있다는 생각엔 변화 없다"고 언급했다. 의사들의 '통일된 의견'을 주문한 것이다.

그는 의사들이 '의대 증원책 전면 백지화'가 통일된 의견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정부는 의사 인력 적정 규모를 제시했다. 의료계도 합리적·과학적 근거를 갖고 '부족하지 않다', 아니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식으로 제시해야지, 근거 없이 '원점 재검토', '내년 증원 동결하고 논의하자'는 건 합리적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지금의 의사 인력의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해 얘기해야지 아무 검토 없이 '원점 재검토'는 현재 상태 유지하자는 주장밖에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방재승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과대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 수 증원과 관련한 논문 공모를 발표하고 있다. 비대위는 의사 정원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 시나리오를 반영한 필요 의사 수의 과학적 추계'에 대한 연구 출판 논문을 공모하기로 했다. 2024.4.2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정부와 의사단체의 팽팽한 기 싸움 속에 의사들 사이에서 새로운 의견도 나왔다.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대가 주도적으로 적정 의대 증원 규모를 연구해 현재 고2가 응시할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반영하는 방안을 내보겠다고 밝혔다.

방재승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사 정원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 시나리오를 반영한 필요 의사 수 과학적 추계'에 대한 연구 출판 논문을 공모하겠다"면서 "연구자들이 논문을 출판하고 이를 충분히 토론해 증원 규모를 정한 뒤 2026학년도 대입 정원에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의대 정원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려면 8~12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의대 증원을 1년 미루자는 것이다.

그는 "적정 증원 규모를 연구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정부와 의사단체가 모두 양보하고 전공의와 의대생은 복귀해 진료를 정상화하자"라고도 제안했다.

다만 이런 제안은 서울대 의대 비대위와 의협·전공의·의대생 등과 합의한 게 아닌 데다, 정부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일단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하자는 주장에는 공감했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연구 논문이 쌓이면 이를 바탕으로 정책 결정자들이 모여서 논의하고 결과를 받아들여 진행하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합리적인 추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는 의대 증원 1년 유예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의협 비대위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줄곧 촉구해왔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의대 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에 반발하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제출한 사직서의 효력이 발생한 25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응급실로 들어가고 있다. 2024.4.2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전공의·의대생들은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와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를 요구해왔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가 복귀하는 7대 조건으로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및 사과 △업무개시명령 폐지 등을 내걸었다.

정부는 '연구 논문 공모를 거쳐 의대 증원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한 후 (2025학년도 정원은 동결하고) 1년 뒤 증원 규모를 결정하자'는 서울대 의대 비대위의 제안에 대해 부정적이다. 복지부는 "필수·지역의료 인력 부족의 해결 시급성을 고려할 때 증원을 내년으로 유예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의료계 차원에서 의사 수급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추계는 바람직하지만, 입시 일정상 2025년도 의대 정원을 재추계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의사 수 추계 연구를 제안한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는 이번 의료대란 사태를 둘러싸고 의사들의 주장과 이번에 시작할 연구 방법 등에 대해 긴급 심포지엄을 통해 정부와 국민에게 알리기로 했다. 오는 30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 '이란 주제로 열릴 이번 심포지엄에선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가 '의사 수 추계 연구'에 대해, 의료대란의 시작과 과정에 대해 학생·전공의·교수·국민의 관점에서 각각 짚어보는 세션이 마련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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