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S공포’… 韓경제 찬물 끼얹나 [뉴스 분석]

이영준 2024. 4. 2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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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 오가는 한미 경제

정부, 성장률 2.6%까지 상향 검토
美, 고물가 속 1.6% 성장률 쇼크
연준 금리인하 늦출 가능성 커져
하반기 내수경기 더 나빠질 수도

‘나홀로 호황’이라던 미국 경제에 돌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드리웠다. 지난 25일 발표된 우리나라의 1분기 경제성장률(1.3%)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것과는 정반대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정반대 의미로 시장 예상을 큰 폭으로 벗어나면서 정부 고심도 커지게 됐다. 세계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점치기 쉽지 않은 데다 우리 경제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원달러 환율 변화의 직접 영향권에 놓여 있어서다.

28일 한국은행·기획재정부와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속보치에서 한미의 희비는 엇갈렸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4%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 이상까지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기관별 성장률 전망치는 한은 2.1%, 기재부·한국개발연구원(KDI) 2.2%, 국제통화기금(IMF) 2.3% 등이다.

반면 시차를 두고 발표된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은 연율 기준 1.6%(전 분기 대비 0.4%)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 3.4%에서 1.8% 포인트 둔화했다. 2022년 2분기 이후 7개 분기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미국은 지난해 주요 선진국들이 일제히 저성장의 늪에 빠졌을 때 홀로 2.5% 성장을 했다. IMF는 지난 16일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7%로 0.6% 포인트 올리며 “미국의 지난해 경기 호황이 올해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IMF의 발표 9일 만에 미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온탕에서 냉탕으로 바뀌었다.

한국 경제에 모처럼 분 순풍이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학계에선 정부의 성장률 상향 조정 가능성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 경제가 좋을 때 함께 좋아지진 않지만, 나쁠 땐 함께 나빠지는 경향을 보인다”며 “미국의 경기 둔화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위기가 지속되면 우리 경제가 뒷걸음질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기재부 관계자는 “수출이 가장 중요한데 반도체는 사이클에 따른 호황기여서 영향이 적을 것 같다”며 “미국의 경기 둔화는 지난해 호황에 따른 숨고르기 차원으로 본다. 지켜봐야겠지만 우리 경제의 성장 경로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시장이 예측한 6월에서 더 미뤄질 가능성이 커진 점도 악재다. 한미 양국의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면 국내 기업의 투자 심리가 꺾이고, 가계부채 확대로 실소득이 줄어 1분기에 반짝 회복된 내수 경기는 언제든 뒷걸음질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 물가가 안 잡히면 연준의 금리 인하가 늦어지고 우리도 못 내리니 연말까지 국내 경기는 둔화할 수밖에 없다”면서 “1분기 성장률에 버금가는 수치는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시장이 전망하는 연준의 금리 인하 시기는 6월에서 9월, 다시 12월 이후로 계속 미뤄지는 추세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연내) 금리를 아예 안 내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고 우리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지 않으려면 금리를 늦게 내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경기 둔화·고물가 상황이 장기화할 것인지도 우리 경제의 회복 경로를 가늠할 중대 변수다. 이른 시일 내에 미국 물가가 안정을 찾아 연준이 금리를 내린다면 우리 통화당국도 고금리 상황을 해제할 모멘텀을 확보하게 된다.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쓸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경기 둔화가 길어지고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3고 상황이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올 성장률 전망치가 2.0% 아래로 미끄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은 일시적 현상이다. 강달러(달러 강세)로 수출이 줄고 기업 재고가 소진됐기 때문”이라며 “고금리가 유지되면 내수 소비가 침체할 수밖에 없으므로 통화당국은 미국의 금리 인하 여부와 상관없이 국내 물가가 안정화됐다 싶으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수 경기 회복을 꾀하려면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1분기 내수 성장을 이끈 건 전 분기 대비 2.7% 증가율을 기록한 ‘건설투자’였다. 정부는 올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 25조 1000억원 가운데 35.4%를 1분기에 집행했다. 재정의 조기 투입 효과가 성장률 반등으로 나타난 만큼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정이 경제성장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식 교수는 “건설투자를 제외하면 내수는 여전히 부진하고 금리·환율 정책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카드는 재정정책뿐”이라며 “저소득층 핀셋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1분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뛰어넘으면서 추경 편성의 명분이 사라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경제 상황이 ‘전쟁·대규모 재해·경기 침체’ 등 국가재정법상 추경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을 위해 채권을 발행하면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올라 투자가 줄어든다. 그러면 오히려 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며 추경 무용론을 주장했다.

세종 이영준·곽소영·서울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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