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직 전공의들, 피부·성형 강연장에 몰려
28일 오후 2시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피부비만성형학회 춘계 학술 대회. 강연장에선 한 의사가 ‘필러 시술법’을 강의하고 있었고, 부스마다 피부 레이저 기계, 시술 약물 등이 전시돼 있었다. 행사장 입구 ‘전공의 이벤트 상품권 수령처’ 앞엔 전공의 50여 명이 줄 서 있었다. 학회 측은 이날 행사장에 온 전공의들에게 백화점 상품권 3만원을 주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이 상품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전공의들이 목에 건 이름표엔 수련 병원명도 함께 적혀 있었다.
학회에 따르면, 매년 열리는 이 학술 대회엔 보통 1000여 명이 참가한다. 주로 미용 시술 강연 등을 들으려는 일반 개원의가 많은데, 올해는 전공의 비중이 대폭 늘었다. 학회 관계자는 “보통 전공의는 10% 정도였지만, 올해는 참가 등록자 1400여 명 중 약 500명이 전공의”라며 “의정 갈등 사태 이후 많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전공의들이 2월 19일부터 진료 현장을 이탈한 지 70일이 지난 가운데 피부·미용 일반의로 일하려는 전공의 등이 행사장을 찾은 것으로 해석된다.
수도권 한 수련 병원 사직 전공의는 “최근 사태 이후 수련 병원 임용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미용 의원에서 계속 일하기로 했다”며 “행사장 곳곳에 전공의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앞으로 미용 분야로 전향하는 전공의가 더 많아질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사직 전공의도 “사직 이후 미용 분야에 관심이 가던 차에 동료와 함께 왔다”고 했다.
이날 젊은 의사들은 부스마다 방문해 자신의 이름표를 보여줬다. 이름표에 있는 QR코드를 부스에서 스캔하면 출석이 인정된다. 학회는 80여 부스에 모두 출석한 방문자들에게 추첨을 통해 명품 가방, 화장품, 미용 기기 등을 주는 경품 행사도 열었다. 인형 뽑기, 즉석 사진 부스 등 젊은 의사를 겨냥한 행사도 있었다. 인형 뽑기 기계 앞엔 전공의 20여 명이 줄 서 있었다.
이날 행사에 많은 전공의가 참가한 것을 두고 일부 의사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 추진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미용 등 분야 일반의로 대거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한 개인 의원 원장은 “‘빅5 병원′ 전공의 선생님들이 아침 9시부터 긴 줄을 선 것을 보니 착잡했다”고 했다.
29일로 전공의들이 이탈한 지 10주가 지났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은 여전히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의협은 이날 정기 대의원 총회를 연 뒤 “정부는 증원 추진을 전면 백지화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자는 “정부가 백지화하지 않으면 의료계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주부터는 주요 대학 병원 교수들이 주 1회 휴진에 들어간다. 서울대·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30일, 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교수들은 다음 달 3일부터 휴진한다. 서울의대 교수들은 휴진일인 30일에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주제로 긴급 심포지엄을 열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전국 의대는 집단 유급 사태를 막기 위해 이달 개강을 시도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로 중앙대·순천향대·인하대·조선대·건양대 등 최소 5개 의대는 이달 내 수업을 시작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의대 교수들의 주 1회 휴진과 관련해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정부는 의사 단체와 일 대 일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힌 만큼, 집단행동을 접고 대화 자리에 조건 없이 나와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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