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전남 교인 수백명 순교의 현장… “원수 갚는다, 사랑과 용서로”

김한수 기자 2024. 4.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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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총, 전남 기독교 유적 탐방
전남 영광군 야월교회 기독교인순교기념관 앞에 선 이철 한교총 공동대표회장(왼쪽)과 야월교회 최종한 장로. /김한수 기자

“나는 이곳에 내 부모 형제들의 원수를 갚으러 왔습니다.”

1951년 4월 7일 전남 영광 염산교회에서 김익 전도사는 이렇게 말했다. 반년 전인 1950년 10월 그의 부친 김방호 목사를 비롯한 교인 77명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인천상륙작전 후 쫓기게 된 인민군과 공산주의자들이 개신교인들을 학살했다. 인근 야월교회는 어린아이까지 교인 65명 전원이 몰살됐다. 그러나 김 전도사가 말한 ‘원수 갚음’은 예상과 달랐다. “원수 갚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을 예수 믿게 해서 천국 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원수 갚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린이를 포함한 교인 65명 전원이 순교한 전남 영광 야월교회 기독교인 순교 기념관 앞에서 이철(왼쪽) 한교총 공동대표회장이 이 교회 최종한 장로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김한수 기자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이철 공동대표회장(기감 감독회장)과 신평식 사무총장 등 탐방단은 22~24일 전남의 기독교 근현대 유적을 답사했다. 전남은 6·25 전쟁 당시 인민군과 공산주의자에 의한 개신교인 피해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는 논리를 뛰어넘는 사랑과 용서, 화해의 역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전남 영광 염산교회 입구엔 6.25 당시 순교한 교인들의 목에 매달아 수장했던 돌과 비슷한 돌을 전시해 당시를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김한수 기자

김익 전도사와 같은 경우는 신안군 임자도에서도 있었다. 1950년 10월 4일 임자진리교회 이판일 장로의 일가족 13명을 포함해 48명이 인민군과 공산주의자에 의해 순교했다. 그해 10월 말 해군과 함께 임자도에 도착한 이판일 장로의 아들 이인재 집사에게 국군은 가족의 원수를 처단할 권한을 줬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집사의 선택은 용서. 그는 후에 목사가 돼 가해자 자녀들의 결혼 주례까지 섰다고 한다.

신안군 증도는 2005년 통계까지도 주민의 90% 이상이 개신교인이었을 정도로 개신교세가 강한 지역. 그 배경에는 문준경(1891~1950)이라는 여성 전도사가 있었다. 마흔 살에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에 진학한 그는 신안의 섬들을 배를 타고 다니며 전도에 나서 6개 교회를 설립한 ‘전도왕’이었다. 문 전도사는 1950년 9월 인민군에 의해 목포에 끌려왔다. 공산주의자들은 문 전도사를 ‘알(전도)을 많이 까는 씨암탉’이라 부르며 적대시했다고 한다. 문 전도사는 인천상륙작전 후 인민군이 목포에서 도망치면서 풀려났지만 ‘교인들이 걱정된다’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증도로 갔다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20여 교인과 함께 순교했다.

전남 신안 증도 문준경순교기념관. /김한수 기자

순교의 상처는 컸지만 순교자들이 뿌린 신앙의 씨앗은 큰 열매를 맺었다. 현재 염산면에만 13개 교회가 있으며 모든 교인이 순교했던 야월교회 역시 주민들에 의해 재건됐다. 야월교회 기독교인 순교 기념관을 안내한 최종한(83) 장로는 “학살 당시에 나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서 “교인들이 모두 순교해 교회가 없어질 뻔했지만 이웃 주민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고 교회를 재건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문 전도사가 뿌린 씨앗도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한 김준곤(1925~2009) 목사와 전 서울중앙성결교회 이만신(1929~2015) 목사 등 걸출한 제자들의 활동으로 이어졌고, 현재도 증도 내에는 교회가 12개에 이른다. 증도는 2010년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가 놓였고 2013년 문준경 순교 기념관이 건립돼 코로나 이전에는 연간 20만명씩 방문객이 찾아 문 전도사의 자취를 기렸다. 문준경 순교 기념관 안상기 장로는 “과거에 비해선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인구 2000명인 증도엔 개신교인 비율이 50%가 넘는다”며 “예배를 드리는 주일 오전에는 섬에 농기구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신안의 섬을 돌며 전도하다 6·25 때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 동상. /김한수 기자

한교총 이철 공동대표는 “죄악이나 잘못까지도 껴안는 것이 신앙”이라며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지금 우리도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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