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필수 의료’ 붕괴의 또 다른 주범, 실손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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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실손의료비 보험) 있으세요?" 동네 병원에 가면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꼭 묻는 말이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자기부담금과 비급여 진료비를 보상해준다.
환자로선 실손보험이 없으면 치료의 질이 달라지는 건지, 돈이 안 돼서 반갑지 않단 건지 영 껄끄러운 질문이기도 하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실손보험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보고 개선을 논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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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가 가격을 정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병원이 부르는 게 값이다. 가격이 비싸면 수요가 줄기 마련이지만 의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국민보험이 된 실손보험 때문이다.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2010년 2080만 명에서 2022년 3997만 명으로 늘었다. 그 사이 비급여 진료비는 32조 원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건보가 부담하는 급여 진료비보다 환자 개인이 내는 비급여 진료비가 빠르게 늘어난 결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개인 의료비 부담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실손보험이 창출한 고가의 비급여 시장은 필수 의료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소득과 워라밸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사명감으로 버티던 의사들 중 상당수가 자괴감을 느끼고 개원을 선택했다. 2020년 진료과목별 연간 평균 임금을 보면 안과 의사 4억5837만 원, 정형외과 4억284만 원, 재활의학과 3억7930만 원 순이었다. 모두 실손보험에 기대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진료과목인데 의료비가 비싼 미국 의사보다 수입이 높다고 한다.
▷건보는 빈약한 재정에서 출발했다. 그렇다 보니 급여 보장 항목이 적고, 진료비는 원가에 못 미치도록 설계됐다. 병원은 ‘3분 진료’로 환자를 많이 보거나 비급여 진료를 늘려 이런 손해를 벌충해 왔다. 정부가 메스를 대려는 혼합진료가 대표적이다.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의사로부터 진찰받고, 급여 물리치료와 비급여 도수치료를 섞어 받는 것이 혼합진료이다. 이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개원가에선 의대 증원보다 더 반발 강도가 세다.
▷비급여 진료 시장은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가 만들어 낸 시장이다. 보험업계는 도수치료, 렌즈 삽입 백내장 수술 등을 보상하는 상품을 출시해 경쟁적으로 가입자를 늘려 왔다. 이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 의사나, 의료 쇼핑을 하지 않는 환자는 바보가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실손보험을 이대로 두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불어날지 알 수 없다. 서둘러 바로잡지 않으면 필수 의료를 살리겠단 의대 증원의 효과도 반감될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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