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길 위로하러 찾아온 장수들, 원균의 패악들 전해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선일회계법인 고문 2024. 4.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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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54> 정유년(1597년) 4월 26일~5월12일

- 원균, 진중서 부하 아내 탐하고
- 장병들 이탈·반역 소식에 한탄

- 권율 “상중이니 천천히 합천오라”
- 지역관리들 쌀·소금 부의 보내

4월26일[6월10일]

흐린 채 개지 않았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길을 떠나 구례현에 이르니 금오랑이 먼저 와 있었다. 손인필의 집에 거처를 정했더니 구례현감(이원준)이 급히 나와 보고는 아주 반갑게 대해주었다. 금오랑도 와서 만났다. 현감에게 “금오랑에게 술을 권하라”고 청하였더니 현감이 아주 대접을 잘 했다. 밤에 앉아 있자니 비통한 생각이 자꾸만 밀려온다.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순신바다공원 전경이다. 이순신 함대 조형물이 서 있고 이순신 장군 활약을 담은 벽화 등이 있다..


4월27일[6월11일] 맑음.

일찍 출발해 송치(순천시 서면 학구리) 아래에 이르니 구례현감이 사람을 보내어 점심을 지어 먹고 가게 했다. 순천 송원(순천시 서면 운평리)에 도착하자 이득종과 정선이 와서 문안하였다. 저녁에 정원명의 집에 도착했다. 원수(권율)는 내가 온 것을 알고 군관 권승경(권율의 조카)을 보내어 조문하고 또 안부를 묻는데, 그 위로하는 말이 못내 간곡하다. 저녁에 이 고을 원(순천부사 우치적)이 와서 봤다. 정사준도 보러 와서 원균의 망령되고 패악한 짓을 많이 말했다.

4월28일[6월12일] 맑음.

아침에 또 원수가 군관 권승경을 보내어 문안하고, “상중이라 몸이 피곤할 것이니 기운이 회복되는 대로 천천히 합천으로 오라”고 전했다. 또 전하기를, “통제사(이순신)와 친한 군관이 한산도에 있다 해서 공문으로 그를 불러낼 테니 그를 데리고서 간호를 잘 받으라”고 하며, 한산도로 보낼 편지와 공문을 만들어 왔다. 순천부사(우치적)의 소실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4월29일[6월13일] 맑음.

신사과(愼司果)와 방은원이 와서 봤다. 병사(이복남)도 원수의 지시를 받을 일이 있다고 하여 순천부로 들어왔다고 한다. 신사과와 이야기했다.

4월30일[6월14일]

아침에 흐리고 저물 무렵에 비가 왔다. 아침 후 신사과와 이야기하였다. 그는 병사 이복남에게 붙들려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병사는 아침도 먹기 전에 보러 와서, 원균에 대한 일을 많이 말했다. 전라감사(박홍로)도 원수에게 왔다가 군관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정유년(1597년) 5월

초계의 원수(권율) 막하로 가기 위한 여정(백의종군, 금부도사의 감시하에 순천에서 구례로, 구례서 하동으로)은 계속된다. 체찰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로와 조문과 대접을 받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산도 원균의 패악을 말한다.

5월1일[6월15일]

2019년 해군사관생도들이 충남 아산시 이순신 백의종군로 구간을 행군하고 있다.


계속해 비가 내렸다. 신사과를 데리고 이야기하였다. 순찰사(감사 박흥로)와 병사(이복남)는 원수가 머물고 있는 정사준의 집에 모여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겁게 논다고 하였다.

5월2일[6월16일]

늦게 개였다. 원수(권율)는 보성으로 가고, 병마사(이복남)는 본영(강진)으로 갔다. 순찰사(박홍로)는 담양으로 가는 길에 내게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 순천부사(우치적)가 와서 봤다. 진흥국이 좌수영에서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원균의 패악을 말했다. 이형복과 신홍수도 왔다. 남원의 종 끝돌이가 아산 집에서 와서 어머니 영연(靈筵)은 평안하시다고 하고 또 변유헌은 식구들(이순신을 배웅하러 천안까지 나왔던 아들들과 조카들)을 데리고 무사히 아산 금곡에 도착하였다고 했다. 홀로 빈 동헌(순천부)에 앉아 있으니 비통함을 어찌 견디랴!

5월3일[6월17일] 맑음.

신사과, 방응원, 진흥국이 돌아갔다. 이기남이 와서 만났다. 둘째 아들 울(蔚)의 이름을 열(䓲)로 고쳤다. ‘䓲자’는, 소리는 기쁠 열(悅)과 같으며, 뜻은 움이 돋아나다,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것으로 매우 좋은 글자이다. 늦게 강소작지가 보러 와서 곡을 했다. 오후 4시쯤에 비가 뿌렸다. 저녁에 순천부사가 와서 봤다.

5월4일[6월18일]

비가 왔다.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 생신날이다. 슬프고 애통함을 참을 길 없다. 닭이 울 때 일어나 앉아 눈물만 흘릴 뿐이다. 오후에 비가 많이 내렸다. 정사준이 와서 종일 같이 있었다. 이수원도 왔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일뿐만 아니라, 왕가의 제삿날, 조부모, 부모, 형제, 자매, 사촌, 처가 등 전 가족의 생일과 제삿날 등을 세심히 기억하고 챙긴다. 심지어 거처를 떠나 출장 중에도 챙긴다. 아마도 이들을 기재해 놓은 장부가 있었던 것 같다. 이 기록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마침내 난중일기도 남겼을 것이다.

5월5일[6월19일] 맑음.

새벽 꿈이 매우 어지러웠다. 아침에 순천부사가 보러 왔다. 늦게 충청우후 원유남이 한산도에서 와서 원균의 흉포하고 패악한 일을 많이 전하고, 또 진중의 장병들이 이탈하여 반역하니 장차 일이 어찌 될지 헤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오늘은 단오절인데 천리 밖의 땅 끝 모퉁이에서 종군하느라 어머니 영연을 멀리 떠나서 장례도 못지내고 (당시 4품 이상의 관리는 사후 3개월이 지난 뒤 장례를 치렀다), 곡하고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니 무슨 죄로 이런 과보를 받는다는 말인가. 나와 같은 사람은 고금에 둘도 없을 것이니, 아!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구나. 그러나 어찌하랴. 다만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5월6일[6월20일] 맑음.

꿈에 돌아가신 두 형님을 만났는데 서로 붙들고 통곡하며 하시는 말씀이 “네가 장사를 지내기도 전에 천리 밖으로 떠나와 종군하고 있으니 대체 모든 일을 누가 주장해 한단 말인가? 통곡만 하고 있으면 어찌하겠는가?” 하셨다. 이것은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와서 이토록 걱정한 것이니 비통함을 금치 못하겠다. 또 남원의 추수 감독하는 일을 염려하시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연일 꿈자리가 어지러운 것도 아마 형님들의 혼령이 말없이 걱정하여 준 것이니 애통함이 한결 더 간절하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엉기어 피가 되건마는 아득한 저 하늘은 어째서 내 사정을 살펴주지 못하는고. 왜 어서 죽지 않는지. 늦게 능성현령 이계명이 상제의 몸인데도 와서 보고 돌아갔다. 흥양의 종 우노음금, 박수매, 조택과 순화의 처가 와서 인사했다. 이기윤과 몽생이 왔다. 송정립, 송두운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저녁에 정원명이 한산도에서 돌아와 흉한 자(원균)의 못된 짓을 많이 이야기하였다. 또 들으니 부찰사(한효순)가 좌수영으로 와서 병 조리를 한다고 했다. 우수사(이억기)가 편지를 보내어 조문했다.

5월7일[6월21일] 맑음.

아침에 정혜사의 중 덕수가 와서 미투리 한 켤레를 바치는 것을 아무리 거절하고 받지 않으려 해도 재삼 간절히 받으라고 하므로 결국 값을 쳐 주어 보내고, 미투리는 바로 정원명에게 주었다. 늦게 송대기, 유몽길이 보러 왔다. 서산군수 안괄도 한산도에서 와서 음흉한 자(원균)의 일을 많이 말했다. 저녁에 이기남이 또 왔다. 이원룡이 좌수영에서 돌아왔다. 안괄이 구례에 갔을 때 전 구례현감 조사겸의 수절녀를 사통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놀랄 일이다.

5월8일[6월22일] 맑음.

아침에 승장 수인이 밥 지을 중 두우를 데리고 왔다. 종 한경을 일이 있어 보성으로 보냈다. 흥양의 종 세충이 녹도에서 망아지를 끌고 왔다. 궁장(弓匠) 이지가 돌아갔다. 새벽 꿈에 사나운 범을 때려잡고 가죽을 벗겨 휘둘렀는데 이건 무슨 조짐인지 모르겠다. 조종(趙琮)이 이름을 연(堧)으로 고치고서 보러 왔고, 조덕수도 왔다. 낮에 망아지에 안장을 얹어 정상명에게 타보라고 했다. 원균이 편지를 보내어 조문하니 이는 곧 원수의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한 것이다. 이경신이 한산도에서 와서 원균에 대해 흉악한 일을 다 말했다. 또 말하기를 원균이 자기가 데리고 온 서리를 곡식 사 오라는 구실로 육지로 보내놓고 그 아내를 사통하려고 하였는데 그 여인이 발악하며 따르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와 고함을 지른 일도 있었다고 했다. 원균이 온갖 계략으로 나를 모함했으니 이 또한 운수로다. 뇌물로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길에 잇닿았으며, 그렇게 해서 날이 갈수록 심히 나를 헐뜯었으니, 그저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5월9일[6월23일] 흐림.

아침에 이형립이 와서 보고 바로 돌아갔다. 이수원이 광양에서 돌아왔다. 순천 사는 과거 출신의 강승훈이 자진해서 군에 응모해 왔다. 부사(우치적)가 좌수영에서 돌아왔다. 종 경(京)이 보성에서 말을 끌고 왔다.

5월10일[6월24일]

궂은비가 내렸다. 오늘은 태종(太宗)의 제삿날이다. 이 날은 예로부터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太宗雨) 과연 저녁나절에 큰비가 왔다. 박줄생이 와서 인사했다. 주인(정원명)이 보리밥을 지어서 내왔다. 장님 임춘경이 점을 쳐서 운수를 봐주러 왔다. 부찰사도 조문하는 글을 보내왔다. 녹도만호 송여종도 삼(麻)과 종이 두 가지를 부의로 보내왔다. 전라순찰사(박홍로)는 백미, 중미 각 1곡(10말)에다 콩과 소금도 함께 구해 군관을 통해 보낸다고 했다.

5월11일[6월25일] 맑음.

김효성이 낙안에서 왔다가 곧 돌아갔다. 전 광양현감 김성이 체찰사의 군관이 되어서 화살대를 구하러 순천에 왔다가 근래의 소문을 전하는데, 그 소문이란 모두가 흉인(兇人) 원균의 일이었다. 부찰사가 온다는 통지가 왔다. 장위가 편지를 보냈다. 정원명이 보리밥을 지어서 내었다. 장님 임춘경이 와서 운수 본 바를 이야기했다. 부찰사가 고을에 도착했다. 정사립과 양정언이 와서 부찰사가 나를 만나보자 한다고 전했으나 내 몸이 불편하여 만나보지 못했다.

5월12일[6월26일] 맑음.

새벽에 이원룡을 보내어 부찰사에게 문안했더니 부찰사는 또 김덕린을 내게 보내어 문안했다. 늦게 이기윤과 기남이 보러 왔다가 도양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침에 아들 열을 부찰사에게 보냈다. 신홍수가 보러 와서 원균에 대해 점을 쳤는데 첫 괘인 수뢰둔이 변하여 천풍구가 되니 용(用)이 체(體)를 이기는 것이라 크게 흉하다고 했다. 남해현령(박대남)이 조문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쌀 2섬 참기름 2되 조 1섬 미역 2동을 부의로 보냈다. 저녁에 향사당으로 가서 부찰사와 함께 이야기하고, 자정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정사립 양정언 등이 와서 닭이 운 뒤에 돌아갔다.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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