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17] 방비엔 튜빙의 악몽
[여행작가 신양란] 지인이 올해 2월에 명예퇴직하고 남편과 함께 ‘라오스 한 달 살기’에 돌입했다. 수도이자 국제공항이 있는 비엔티안에서 방비엔으로 이동한 다음 루앙프라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방비엔에서 다양한 체험에 열광하며 특히 튜브를 타는 ‘튜빙’을 예찬했다. 하지만 내겐 방비엔 튜빙에 식겁한 사연이 있다.
2007년에 처음 라오스를 여행할 때, 방비엔에서 제일 기대가 된 것은 튜빙이었다. 가이드북의 이런 설명 때문이었다.
‘툭툭이를 타고 강 상류로 올라간 다음, 튜브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물살을 타고 2시간 정도 내려온다. 물이 맑고 한적하며, 강 주변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1인당 4달러.’
이런 설명에 홀리지 않을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방비엔은 ‘라오스의 계림(중국 구이린)’으로 불릴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고 하니,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가족들은 두 시간씩이나 튜브를 탄다는 사실에 떨떠름해 했지만, 내가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서 투어를 신청했다. 그렇게 부푼 가슴으로 튜브에 몸을 실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그날 이후로 현지 투어에 있어서 만큼은 가족 앞에서 한없이 오그라드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시작은 경쾌했다. 안내서에 적힌 대로 쏭강의 물은 한없이 맑았고, 날씨도 화창했다. 우리는 튜빙이 끝나는 곳까지 손을 꼭 잡고 함께 가자고 약속한 뒤, 동동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데는 시간이 많이 안 걸렸다. 한 아이는 급류에 휘말려 휭 떠내려가 버리고, 다른 아이는 소용돌이에 들어가 빙빙 돌기만 할 뿐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또 한 아이는 너무 얕은 곳에 튜브가 걸려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와중에 난 떠내려가는 아이를 따라가야 할지, 소용돌이에 갇힌 아이를 꺼내줘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허둥댔다. 아니, 어른인 나조차도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족과 떨어진 채 악전고투하며 내려가고 있는데, 당시 8살이던 막내아이가 카약에 실려 상류로 올라오고 있었다. 카약을 모는 청년 말을 들어보니,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기에 자신이 구조해 준 것이라고 했다. 모골이 송연한 일이었다.
나는 아이를 구해줘 고맙다고 무수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그 청년은 인사를 받자고 날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구해준 대가로 20달러를 달라고 했다. 자식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그깟 20달러가 문제인가. 100달러라도 달라면 줘야지.
그러나 그 당시 내게는 돈이 없었다. 튜빙하다 보면 물에 젖을 게 뻔하기에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고 있었다. 나는 “지금은 돈이 없다. 나는 타원쑥 리조트에 묵고 있는데, 거기 가서 주겠다”라고 말했다.
그 청년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지, 튜빙 종료 지점까지 가는 동안 “내가 이 아이를 구해줬다. 20달러를 잊지 말라”는 말을 스무 번도 더 했다. 나중엔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 우리 가족이 튜빙을 마치는 데는 4시간이 걸렸다. 가이드북의 2시간은 물놀이에 능숙한 젊은이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는 물에 잠긴 부분은 팅팅 불고, 물 밖으로 나온 부분은 건기의 뙤약볕에 새카맣게 탄 채로 튜빙을 마쳤다.
애들은 이구동성으로 “엄마 때문에 이게 뭐냐?”고 투덜거리는데,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던 남편은 “엄마가 알고 그런 건 아니니, 그만 해라”라고 말했다.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튜브에 몸을 싣고,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동동 떠내려가는 낭만적인 체험을 기대했는데, 제멋대로인 물살과 싸우느라 풍경에는 눈길도 주지 못했다. 방비엔을 떠나는 날 창밖으로 보이는 안개 낀 산야를 보며, ‘아, 라오스의 계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방비엔은 우리 가족에게 튜빙의 악몽이 있는 기억 속 불운한 마을이 되고 말았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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