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넥슨, 그리고 하이브 [여기 힙해]

이혜운 기자 2024. 4. 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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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 신곡 '마에스트로'의 뮤직비디오 티저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먼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앱 ‘배달의 민족’을 개발한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 김봉진과 걸그룹 ‘뉴진스’를 만든 어도어의 창업자 민희진 중 누가 더 위대한 사람인가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넥슨이 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는 것과 어도어가 ‘뉴진스 앨범’을 제작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힘든 과정일까요?

걸그룹 뉴진스./어도어

정답은 ‘비교할 수 없다’입니다. 당연한 말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하이브 사태는 이런 감정들이 바탕이 돼 곪아 터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식 시장에서 엔터주는 ‘도박주’라고 불립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데뷔한 아이돌 그룹이 ‘방탄소년단’처럼 성공하면 순식간에 시가총액은 8조원이 됩니다. 반면, 눈물의 회식 영상이나 열애설만으로도 하루 만에 시가 총액 2조원이 빠지기도 합니다.

방시혁 의장이 2021년 ‘빅히트’에서 ‘하이브’로 사명을 바꾸며 ‘엔터테인먼트’라는 글자를 빼고, ‘종합 IT플랫폼 기업’을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아티스트에게만 의존하는 사업 구조가 아닌 콘텐츠와 IT 서비스, 유통으로 확장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하이브는 임원진들을 IT출신으로 채웠습니다. 민 대표가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한 박지원 대표이사는 넥슨 CEO, 정진수 CLO는 엔씨소프트 수석부사장, 박태희 CCO는 우아한 형제들 홍보실장, 김태호 COO는 풀러스 대표이사 출신입니다. 민 대표는 스카우트된 C레벨 중 거의 유일한 엔터업계 출신입니다.

지난해 11월 6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에서 열린 MOU 체결식에 참석한 (왼쪽부터) 박태희 하이브 CCO, 박태경 MBC 부사장, 박지원 하이브 CEO, 안형준 MBC 사장, 김태호 하이브 COO, 전진수 MBC 예능본부장./하이브

방 의장의 비전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IT라인’과 ‘아티스트 라인’이 부딪혔고, 이 과정이 외부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IT 라인’은 ‘아티스트 라인’이 회사 경영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티스트 라인’은 ‘IT 라인’이 창작의 고통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겠지요.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하이브의 뜻처럼 ‘연결과 확장, 관계’를 했다면 시너지가 났겠지만, 그럴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존중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하이브가 배포한 보도자료와 민 대표가 발표한 기자회견에서도 나타납니다. 하이브는 (아마 IT라인이 주도해서 작성했을) 보도자료로 “민 대표가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다”며 회사와 시스템에 해를 가하려고 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민 대표는 “내 창작물이 공격당했다”고 주장하지요. 아티스트와 앨범을 이야기할 때도 하이브는 “회사 자산”이라고 이야기하고, 민 대표는 “내 자식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서로가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의 결정적인 불씨가 됐을 ‘주주 간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 초안을 만든 이들은 ‘(IT업계 입장에서) 이 정도면 잘해준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엔터업계에서 일한 민 대표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노예 계약’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면 초안부터 엔터업계 방식대로 썼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러기엔 전례가 없습니다. 국내 엔터업계 상장사는 많지 않습니다. 민 대표처럼 그룹 내에서 계열사를 만들어 이렇게 빠른 시기에 흑자로 전환한 레이블도 없고요.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하이브 경영권 탈취 시도와 관련한 배임 의혹에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그럼 마지막 질문, 하이브는 IT기업일까요? 엔터 기업일까요? 제3자 입장에서 저는 그래도 엔터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하이브의 기본 플랫폼인 위버스 시스템이 멈추는 것보다, 아이돌 멤버 한 명의 열애설이 더 크게 주가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게임 업계에서는 내가 게임을 많이 하는 헤비 유저라면 들어간 돈과 시간이 아까워 새로운 게임이 나와도 쉽게 갈아타지 않습니다. 이럴 때 회사는 게임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됩니다. 그러나 엔터업계는 다릅니다. 어제까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가며 덕질을 했더라도, 오늘 한 라이브 방송에서의 실언 한 마디로 마음이 돌아설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가 생기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민과 쿠팡이츠의 경쟁처럼 누구의 배달료가 더 싸고, 사용환경이 좋은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회사 플랫폼이 엉망이어도 가수가 좋고, 음악만 좋으면 그 힘듦을 감내하고 좋아합니다. 당장 빅히트의 방탄소년단 전설이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성수동 방탄소년단 팝업 현장/빅히트 뮤직

이번 하이브 사태에서 대중의 마음이 민 대표로 기우는 것은 충격적인 기자회견의 도파민 효과도 있지만, ‘지금 하이브에서 음악이 중심이 되지 않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민 대표를 감사하는 진행 과정은 창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없어 보입니다.

한때 ‘구찌의 여신’으로 불린 프리다 지아니니는 10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한 뒤 2015년 퇴임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구찌와 지아니니를 떼어서 생각할 수도 없었지만, 그녀는 컬렉션도 중도 포기하고 조용히 나갔습니다. 업계에서는 오너와의 불화설이 제기됐지만,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구찌는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내부 승진시키며 새 얼굴로 내세웠고 이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옷은 기업이 만들지만, 패션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니깐요.

알렉산드로 미켈레와 프리다 지아니니./endribeg.wordpress.com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음반은 기업이 만들지만, 음악은 사람이 만듭니다. 회사가 더욱 강조되는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본과 시스템, 인맥만으로 엔터업이 성공할 수 있다면 대기업이 안 할 리 없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힙한 장소를 소개해 드리는 ‘여기힙해’ 본론을 시작하겠습니다. 하이브 경영진 사태보다 더 주목 받았으면 하는 작업들입니다.

세븐틴 서울월드컵경기장 콘서트/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지난 27~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그룹 ‘세븐틴’의 앙코르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다음 달 18~19일은 오사카 얀마 스타디움 나가이, 같은 달 25~26일은 가나가와 닛산 스타디움에서 팬들을 만납니다. 닛산은 회당 약 7만명이 참석할 수 있는 일본 최대 규모 공연장입니다.

세븐틴 상암 콘서트 '마에스트로' 첫 공개 공연/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오늘인 29일에는 세븐틴 베스트 앨범 ‘17 IS RIGHT HERE’를 발표합니다. 앨범에는 단체 곡 ‘마에스트로’를 포함해 신곡 4곡이 담겼습니다. 전 공연장에서 미리 신곡들을 보고 왔는데요. 10년차 아이돌그룹이 이런 군무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코와 제니./KOZ 엔터테인먼트

앞서 26일에는 지코가 블랙핑크 제니와 신곡 ‘스팟!’을 냈습니다. 공개되자마자 멜론 ‘톱 100′과 지니, 벅스의 실시간 차트에서 일제히 1위에 올랐고, 아이튠즈에서는 31개 국가에서 1위, 중국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QQ뮤직에서도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조회 수 1143만회를 기록 중입니다. 지코와 제니의 힙한 감성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지코와 제니./KOZ 엔터테인먼트

27일 자정 어도어의 뉴진스도 새로운 곡 ‘버블 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초여름 바닷가의 청량함을 그대로 담아낸 곡입니다. 다음 달 24일 발매될 ‘하우 스위트’의 선공개곡입니다. 뉴진스는 이 앨범 활동을 시작으로 6월 26~27일 도쿄돔 팬 미팅도 준비돼 있습니다.

뉴진스./어도어

뉴진스 뮤직비디오 역시 하루 만에 조회 수 1086만회를 찍었습니다. 현재 유튜브 인급동(인기 급상승) 음악 1~2위는 지코와 뉴진스가 엎치락 뒤치락합니다. 둘 다 채널은 ‘하이브 레이블스’ 입니다.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는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소중한 기억 담은 팝업스토어 ‘모노크롬’이 문을 열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흑백 사진 등이 최초 공개된다고 합니다. 다음 달 12일까지 진행되는 이 팝업은 이후 일본·인도네시아·미국·태국 등에서도 열릴 예정입니다.

성수동 방탄소년단 팝업스토어/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다음 달 24일에는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의 신보 ‘Right Place, Wrong Person’ 전곡 음원과 타이틀곡 뮤직비디오가 공개됩니다. 총 11곡이 수록되는 이번 앨범에서, 절반에 가까운 5곡의 뮤직비디오가 제작됐습니다. 풍부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얼터네이티브 장르 음악으로, RM이 전곡의 작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RM의 신보 일정표./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이 모든 작업에는 수많은 직원들의 땀과 노력이 있습니다. 엔터업계는 연봉이 적고 워라벨이 안 좋기로 유명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일하는 것은 ‘이 업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돌 그룹 제작자를 인터뷰를 할 때 ‘아버지’나 ‘어머니’, ‘삼촌’ 같은 표현을 많이 씁니다. 아이돌 멤버들이 연습생으로 들어오는 나이는 10대 초중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학교와 집에 거리를 둬가면서 기획사 커리큘럼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기획사는 학교이자 가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돌들은 정치인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강요받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아이돌 멤버가 욕을 했니 안했니로 난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어린 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그런데 기획사 어른들이 이렇게 전 국민 앞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아티스트와 팬, 직원들의 기분은 어떨까요?

2019 MAMA 시상식장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진./유튜브

어떤 순간에도 K팝 아티스트, 팬과 직원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방시혁 의장과 민희진 대표, 하이브 임원진 모두 동의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번 문제의 해결 방법은 딱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MAMA 시상식장에서 방탄소년단의 진이 수상 소감으로 한 말입니다.

“모두가 정직한 방법으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 좋은 음악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듣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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