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사람 구하는 자격은 따로 없다
얼마 전 한 지방자치단체 청사 앞에 걸린 이주노동자 법률상담사업을 홍보하는 플래카드를 본 적이 있다. 그림도 없는 하얀 바탕에 한글로만 커다랗게 ‘임금체불 이주민 대상 무료법률상담 실시’라고 인쇄된 플래카드에는 상담 시간을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로, 상담 장소는 군청 민원실이라 안내하고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를 보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중에 평일 오후에 밀린 월급 상담을 받기 위해 군청 민원실을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도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임금체불’이라는 한국어가 인쇄된 홍보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올 노동자는 더욱이 없다. 솔직히 이 정도면 누군가 찾아와도 문제다. 이주노동자의 삶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련된 법률상담에는 제대로 된 통역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도 준비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큰 결심을 하고 찾아온 이주노동자는 쏟아지는 어려운 법률용어들 속에서 ‘아, 내가 이 돈을 받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단념할 위험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할 수도 없다. 솔직히 뭐라도 하는 것이 어디냐 하는 절박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현장은 참혹하다.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규모는 매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이주노동자가 받지 못한 월급은 총 1223억원 수준이다. 2018년 972억원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자료가 노동부에 정식으로 사건이 접수되어 확인된 체불금액이라는 점에서 신고조차 못하고 포기하거나, 실제 월급을 받지 못했지만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조사 과정에서 인정되지 못한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체불임금은 몇배로 추정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월급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존 수단이다. 근로기준법에서 임금체불을 범죄로 규정하고, 임금을 못 받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여러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이유도 노동의 대가가 제대로 지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기 때문이다. 임금체불은 생존권을 빼앗는 중범죄이고, 피해자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다.
한국의 법과 제도에 익숙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법과 제도가 피해자들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아찔한 거리를 메꾸기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쉬는 일요일에 센터를 열고, 그 나라 말을 배우고 눈을 마주치며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진정서’라는 종이에 옮겨주는 사람들이 바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활동가들이다. 국가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열악한 환경과 박봉에도 묵묵히 해온 이들에게 윤석열 정부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문을 닫아버렸다. 얼마 전 검찰은 센터 활동가가 이주노동자를 대신해 임금체불 진정서를 작성한 것이 법을 위반한 범죄행위라고 낙인찍었다. 사람 구하는 데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검찰의 판단을 보며 민원실 앞에 펄럭이던 플래카드 생각이 났다. 활동가는 죄가 없다. 생존권을 빼앗긴 절박한 사람들을 외면한 법과 제도가 유죄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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