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한 달은 매우 길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20여일이 지났다. 정치권은 다가올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분주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위성정당은 모정당과 합당하였고, 조국혁신당의 교섭단체 구성을 놓고도 날선 공방이 오갔다. 법사위원장을 놓고도 거대 양당은 기싸움을 하고 있다.
이렇게 22대 국회 향방을 둘러싼 여러 소식들을 보고 있으면 이미 21대 국회의 시간은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21대 국회의 임기종료까지는 아직 한 달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한 달 갖고 무엇을 할 수 있냐 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2020년 5월21일 20대 국회는 임기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133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된 1만6000개의 법안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국회가 할 일은 한 것이다.
21대 국회도 마찬가지이다. 21대 국회 4년 동안 발의된 법안은 2만5000건, 그중 통과된 것은 9400건에 불과하다. 20대 때와 같이 약 1만6000개의 법안이 폐기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여야는 채 상병 특검법 등 이른바 5대 쟁점 법안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지금 국회에는 그 외에도 통과되어야만 하는 법들이 수두룩하다. 이들 법들은 시민들이 인간답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법들이다.
먼저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있다. 2013년 이후 7년 만에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고 그 후 3건의 평등법안이 발의되었지만, 4년간 국회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시민들의 압도적 찬성 여론과 인권시민사회의 요구에도 국회가 한 것은 반쪽짜리 1소위 공청회뿐이었다. 일상화된 차별과 혐오 앞에 많은 이들을 위협하는 이 상황을 국회는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안들도 산적해 있다. 제22대 총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비동의간음죄를 정책 공약에 포함했다가 실무상 착오라며 철회하는 행태를 보였는데, 이미 21대 총선 당시 공약했던 법안이란 점에서 더 늦지 않게 입법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이미 폐기되었으나 여전히 공백으로 남은 ‘낙태죄’ 보완입법도 시급하다. 죄는 아니나 안전한 임진중지가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이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2022년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되었지만 그 후 잠자고 있는 장애인권리보장법안과 탈시설지원법안도 국회에 남겨진 과제이다. 지난 4월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맞아 보건복지부는 ‘함께하는 길, 평등으로 가는 길’이라는 슬로건을 공표했다. 국회가 장애인권리를 위한 입법을 완수하는 것이 바로 평등으로 가는 길이다. 성소수자의 평등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법들도 있다. 헌정 사상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혼인평등법(민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 이루어졌다. 다양한 생활 공동체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 역시 동성혼 반대라는 혐오 논리에 막혀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
마지막으로 학생인권법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도중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 12년 만에 시의회 의결로 폐지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24일 충청남도의회가 충남학생조례 폐지 재의안을 가결시킨 지 이틀 만이다. 학생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한 조례가 지방의회에서 일방적으로 폐기된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국회 몫이다. 그리고 지난 3월26일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어 계류 중에 있다.
정당을 떠나서, 당선 여부를 떠나서 현재 296명의 국회의원은 모두 국민을 대표해서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을 준수할 책임을 지고 선출된 이들이다. 이들이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하기를, 그리하여 22대 국회에서도 더 나은 논의가 이어질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앞으로 펼쳐질 4년은 길지만, 남은 한 달도 매우 길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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