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신세계그룹… '1조원 풋옵션 분쟁'

박종관, 차준호 2024. 4. 2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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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닷컴에 1조원 투자한 어피너티·BRV캐피탈 풋옵션 행사 준비
신세계그룹 "풋옵션 발생하지 않는 요건 충족" vs FI "GMV 중복 계상 제거하면 약속 못 지켜"
신세계 건설 부진에 인수 기업 영업권 상각으로 사상 첫 적자낸 이마트 재무 부담 '초비상'
이 기사는 04월 28일 16:1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신세계그룹이 SSG닷컴 재무적투자자(FI)에게 1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당장 돌려줘야 할 위기에 처했다. 투자자에게 약속한 SSG닷컴 상장 작업이 지연되고, SSG닷컴이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커지자 FI들이 투자금 회수를 요구하면서다. 본업인 대형마트 사업이 부진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로 신세계건설이 흔들리는 가운데 SSG닷컴 리스크까지 터지면서 신세계그룹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SG닷컴의 대주주인 이마트와 신세계는 FI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과 다음달 1일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행사 시작 시점을 앞두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어피너티와 BRV는 SSG닷컴에 2019년 7000억원, 2022년 3000억원 등 총 1조원을 투자해 각각 15%씩 지분을 갖고 있다.

신세계그룹과 FI는 투자 시점에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2023년 SSG닷컴의 총 거래액(GMV)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거나 기업공개(IPO) 관련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FI 보유 지분을 이마트와 신세계가 웃돈을 주고 다시 사가야 하는 내용의 계약이다. e커머스 산업이 급성장세를 이어가던 당시에는 이 계약이 큰 문제가 없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쿠팡의 진격에 알리와 테무 등 C커머스 공세까지 더해지면서 SSG닷컴이 상장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은 SSG닷컴이 GMV를 초과 달성해 약속했던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FI들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FI들은 계약서상 명시된 실질 거래액으로 따져 상품권 판매 실적 등을 걷어내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여전히 풋옵션이 살아있다고 강하게 맞서는 것으로 전해진다. GMV 중복 계상 문제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는 양측이 풋옵션 행사 시작일인 다음달 1일 전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법정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이마트와 신세계는 당장 1조원 이상을 투입해 SSG닷컴 지분 30%를 되사오기엔 자금 여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연간 기준 사상 첫 적자를 냈다. 2019년 6조원이었던 이마트의 총차입금은 지난해 11조5000억원까지 불어났다.

 호황기 때 끌어다 쓴 투자금이 독이 돼 돌아와

올초부터 투자은행(IB) 업계엔 이마트가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권을 전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SSG닷컴 '풋옵션 시한폭탄'이 곧 터질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 건 그때부터다. 신세계건설 위기로 신음하는 신세계그룹에 SSG닷컴발(發) 1조원 규모의 재무 부담이 더해지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졌다. 업계에선 풋옵션 이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신세계그룹의 전면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세계·이마트 공시 위반 가능성도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SG닷컴의 대주주인 신세계와 이마트가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과 풋옵션 행사 시점을 앞두고 벌이고 있는 협상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SSG닷컴이 약속한 거래액(GMV) 조건을 만족시켰는지 여부다.

신세계그룹은 SSG닷컴에 투자를 유치할 당시 2023년까지 GMV 5조1600억원 이상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SSG닷컴의 GMV가 기준점을 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FI들은 거래액 산정 조건에 문제를 제기했다. 상품권 구입 등 실질적인 거래로 볼 수 없는 거래는 거래액 계산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게 FI들의 주장이다. 이런 거래를 제외하면 거래액이 대폭 줄어들어 해당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양측의 계약서에도 거래액 계산 시 실질적인 거래만 산정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FI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공개(IPO) 관련 조건도 이슈다. 신세계그룹은 풋옵션 행사 시점 전까지 SSG닷컴이 실제 IPO에 성공하진 못하더라도 복수의 증권사로부터 상장이 가능하다는 의견서를 받아야 한다. 이미 상장 주관사까지 선정한 만큼 신세계그룹은 이 약속 역시 지켰다는 입장이지만 FI들은 증권사가 상장 업무 수임을 위해 제출한 '제안서'는 '의견서'로 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FI와 풋옵션 유효 여부를 놓고 분쟁 가능성이 남아있는 상황에 이마트가 지난달 20일 제출한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풋옵션이 발생하지 않는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그간 인식하던 금융부채 5983억원을 제거한 것도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계도 같은 내용을 사업보고서에 담아 공시했다. 이는 회계처리 위반과 공시 위반으로 볼 수 있어 금융감독원 조사까지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마트 감사인은 삼정회계법인, 신세계 감사인은 삼일회계법인이다.

 SSG닷컴 사업 전략 전면 재검토

풋옵션 행사 시작일은 다음달 1일로 양측은 오는 30일까지 '끝장 협상'을 벌여 결론을 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FI들은 SSG닷컴이 국내 e커머스업계에서 경쟁력을 잃은 탓에 사실상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만큼 풋옵션이 살아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신세계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출자자(LP)들에 대한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FI 입장에선 풋옵션 문제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풋옵션 사태를 계기로 SSG닷컴 관련 사업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SSG닷컴은 신세계그룹 전체의 온라인 창구 역할을 맡고 있지만 쿠팡과 네이버쇼핑, 최근에는 알리와 테무 등에 밀려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3조원을 투입해 인수한 G마켓과의 시너지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SSG닷컴과 G마켓의 합병도 고민했지만 FI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그룹 내부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FI를 내보내고 SSG닷컴을 중심으로 그룹 내 온라인 계열사를 재편하는 방안 등도 논의하고 있다.

일각에선 G마켓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인수한 게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SSG닷컴과의 시너지는커녕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전략 강화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G마켓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바람에 이마트의 재무구조는 악화되고, SSG닷컴에 적절한 추가 투자가 이뤄지지 못해 SSG닷컴의 경쟁력이 퇴보했다는 설명이다.

 M&A 후유증으로 재무구조 악화

수면 아래 있던 SSG닷컴 풋옵션 리스크까지 터지면서 신세계그룹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신세계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쿠팡 등에 밀려 본업인 대형마트 사업이 부진한 데다 신세계건설의 부진, G마켓 영업권 상각 등의 악재가 겹친 탓이다.

이마트는 최근 3년 새 G마켓과 더블유컨셉, SSG랜더스, 셰이퍼 빈야드 등을 무리하게 인수하며 재무구조도 악화됐다. 지난해 말 기준 총차입금은 11조5000억원, 순차입금은 9조3000억원에 달한다. 부채비율은 141.7%, 차임금의존도는 34.5%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기 전인 2020년과 비교해 대부분의 지표가 악화됐다.

이번 SSG닷컴 풋옵션 사태를 계기로 신세계그룹이 미뤄왔던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선 강희석 대표가 물러나고 '관리형 최고경영자(CEO)'인 한채양 대표가 선임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세계그룹이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해 자금 마련에 나설 것으로 봤다. IB업계에선 잠재 매물의 원매자를 물밑에서 활발히 물색하기도 했다. 매각 가능 매물로는 스타벅스 소수 지분, 신세계푸드, 이마트24 등이 꼽힌다. 

다만 실제로 매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마트 계열사 중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매물은 스타벅스 소수 지분뿐"이라며 "팔고 싶어도 팔 수 있는 게 없어 이마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신세계그룹은 SSG페이와 스마일페이를 토스에 1조원 안팎에 매각하는 협상을 1년여간 이어왔지만 최근 이 거래는 최종 무산됐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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